보릿고개
보릿고개
  • 박사윤 한국어강사
  • 승인 2020.04.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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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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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녹음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바람에 이끌려 난 봄 처녀가 되었다. 넓은 푸릇한 밭 사이로 홀로 앉아 나물 캐는 날이 많아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나는 밭으로 행한다. 봄나물을 캐러 자주 나가는 나를 보고 그 많은 것 캐다가 먹을 사람도 없는데 뭐 하려고 하느냐고 딸이 물었다. 장에 내다 판다는 내 말에 의아해한다. 농사라고는 한 번도 지어 본 적 없는 내가 밭으로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코로나19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그동안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꿈꾸어 왔는데 이번에 마음껏 즐긴다고나 할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상황이지만 이 힘든 상황을 극복할 무언가가 나에게도 필요했다.

집에만 있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마음이 병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다. 냉이를 캐고 있는데 여든이 넘은 마을 어르신이 오셔서 다른 나물도 캐라며 이것저것 나물 이름도 알려 주셨다.

냉이밖에 몰랐던 내가 민들레도 뜯고, 처음 들어 본 지짐개도 뜯었다. 막상 뜯긴 했지만 뭔가 불안해서 진짜 먹어도 되는 나물이 맞는지 몇 차례 물으니 봄에 나는 풀은 독소가 없어서 모두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기를 한 시간, 바구니에 가득 찼다. 나물 캐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렸는데 집에 와서 다듬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루 나가서 뜯어오면 그날은 할 일이 많아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자 급기야 아는 지인의 밭에 가서 땅콩도 심었다. 생전 밭일이란 해 본 적 없는 내가 이틀 비탈진 밭에서 일했더니 양쪽 발톱에 피멍이 새카맣게 들었다. 그만큼 농사일이 힘들다는 것일 게다. 고된 노동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무척 편하고 좋았다. 노동은 몸 쓰는 일이라 힘들긴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자연과 벗 삼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지만,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모처럼 찾은 밭에는 새싹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멀리 보이는 보리밭은 잔디를 깔아놓은 듯 푸르다. 산과 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상쾌해진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행복인 것 같다.

2015년에 발표된 진성의 노래 <보릿고개>가 다시 재조명을 받고 있다. 트로트의 열풍으로 트로트를 부르는 젊은 층이 많아졌고, 급기야 어린 트로트 신동이 떠오르고 있다. 그 어린 트로트 신동이 부른 <보릿고개>는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보릿고개>노래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게다. 코로나 19를 가리켜 제3차 전쟁으로 표현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반영된 게다.

희망을 잃었거나 없을 때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므로 인해 희망을 소망해 보려는 심리적 표현이다. 또한, 힘들 때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는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그때를 회상하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이것 역시 희망을 갖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며 마음을 다잡는다.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보릿고개>를 들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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