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백종원, 그리고 최문순
고구마와 백종원, 그리고 최문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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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TV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이토록 가슴 뜨거웠던 적은 처음이다. 사람 키의 서너 배쯤 되어 보일 만큼 높은 천장을 가진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고구마 상자. 팔려나가지 못한 작물들은 뜻밖에도 농사가 잘되어서 크기가 아주 실한 우량 상품, 대왕고구마이다. 기름 없이 공기로 요리하는 주방가전제품 에어 프라이어 사용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크기가 큰 고구마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는데, 생산농가의 가슴은 미어지겠다.

백종원은 SBS 예능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을 통해 농부의 속을 썩이는 우량 고구마를 활용해 색다른 세 가지 음식의 조리법을 공개했다. 고구마생채와 고구마 수플레, 고구마 피자 등 생소한 세 가지 음식을 개발하고 재배농가 가족들을 초대해 시식하는 시간도 가졌다. 백종원은 `방송이 나가면 대왕고구마를 많이 찾아 주실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종원은 SBS 예능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을 고정 패널들과 진행하면서 그동안 대파와 양파, 제주도 양식 광어 등의 식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성찬의 세상을 열어 왔다. `농벤저스'라는 영웅적 별칭을 얻기도 한 이들의 활약으로 판로가 막히거나 산지 가격이 폭락하는 농수산물이 새로운 희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차마 밭에서 수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온전한 상태 그대로 갈아엎는 농부의 찢어지는 서러움을 대하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애써 키워 온 농수산물이 본래의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용도 폐기되는 일은 그만큼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인간의 횡포나 다름없다.

하물며 산지 가격은 폭락하는데도 소비자 가격은 요지부동이거나 오히려 올라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풀이된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들 사이에 켜켜이 쌓여가는 중간상인들의 이득 때문인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고쳐질 기미가 없다. 12년 만에 최저가로 폭락한 제주산 양식 광어의 kg당 산지 가격은 지난 24일 기준으로 7766원. 그러나 대형마트 기준 광어회 가격은 고작 200g 정도에 1만 4000원 수준이다. 횟감을 기준으로 광어 한 마리에 무려 3~4배나 출하가격과 차이가 난다. 로컬푸드가 무색하게 복잡한 유통구조가 고집되고 있으니, 중간상의 폭리도 문제지만 막대하게 소비되는 에너지 낭비와 그로 인한 기후온난화를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강원도지사 최문순은 MBC 보도국 사회부 기동취재반 기자 출신이다.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2011년부터 3선의 강원도지사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창고에서 썩어나가는 강원도 감자를 택배비를 부담하면서 직접 판촉활동을 벌여 20만 상자의 재고 감자를 모두 팔았고, 1.7톤에 달하는 산나물도 완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코로나19로 수출길이 막힌 아스파라거스로 세 번째 SNS판매에 나선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덕분에 구매자들로부터 “(아스파라거스)구입이 고시보다 어렵다”는 감동적 푸념을 받기도 했다.

백종원과 최문순의 행보는 가장 적극적인 21세기형 유통구조의 혁신이다. 좋은 농수산물 생산을 잘하는 농어민의 한정된 능력과 요리에 특출한 재능, 그리고 SNS를 활용한 직판시스템 활용이라는 개별 요소들이 결합돼 조화를 이루는 원소스 멀티유스에 적확한 모델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일은 코로나19 극복처럼 슬기로운 공동체의 표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이런 상생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마음을 잘 이해하는 휴머니즘이 현장을 지키는 융·복합의 뜨거운 전형이 될 것이다.

개학이 늦어지면서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학교 급식예산으로 농산물꾸러미를 꾸려 초·중·고 학생 364만 명의 가정에 보내준다는 정부대책이 나왔다. 등교를 하지 못하는 자녀들의 매 끼니를 챙겨야 하는 학부모의 식비 부담을 덜어주고, 꽉 막힌 농어민의 판로를 뚫어주는 동시에 싱싱한 제철 식품을 먹게 할 수 있는 1석3조의 혜택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100일이 지나서야 나타나는 이런 대책은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헤아림이 넉넉하지 못했다는 것. 관료들의 세계와 민생 현장이 여전히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코로나19 발생 100일을 지나 서로에게 더 다가서는 푸르른 5월을 서둘러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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