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에
어느 멋진 날에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 승인 2020.04.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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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지부장

 

먼발치 느릿느릿 한갓지게 꼬리를 잔뜩 치켜세우고 거니는 잿빛 고양이, 꼬리를 하늘로 세우고 걷는 모양이 기분이 몹시 좋은가보다. 아들 집에도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있어 반가움에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눈으로 고양이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도심공원엔 비둘기가 사람들과 친숙하다 보니 외려 사람들이 비둘기를 피해간다고 하더니만, 인기척이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엉덩이를 살살 흔들며 모텔 워킹 하듯 우아하게 걷는 고양이 뒤를 쫓았다. 갑자기 화단 쪽을 향해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몸을 낮추어 웅크린 채 목에 힘을 주고 무엇인가를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 금방이라도 덮칠 기세다. 짐작건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힘이 들어간 두 눈에 불이 떨어지고 있을 것 같다. 나도 사냥이라도 하는 양 덩달아 목에 힘이 들어가고 표적이 있는 곳을 주시하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슬그머니 나온 또 다른 고양이, 들 고양이인 듯싶다.

첫 만남 일 텐데 경계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닐다 그들만의 몸의 언어로 부비고 둥글며 놀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 나, 일분을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는 말이 있듯 엔도르핀이 솟아 업 된 기분은 몸조차 가벼워졌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 했거늘 낯선 고양이가 주는 소소한 작은 행복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처럼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반려동물이 급증했다. 집사인 아들 집, 고양이이름도 `금강'이다. 금강아, 부르면 슬금슬금 다가와 얼굴을 부비며 얼마나 애정표현을 하는지 마음이 녹아내린다. 어느 때는 세상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능청스럽게 슬쩍 고개만 들어 눈만 마주치고는 그대로 누워서 꼬리만 살살 흔들어대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럴 때면 천연덕스런 행동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양이 발톱에 할퀴고 할퀴어 아들 손등과 팔뚝엔 온통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일상에 생기와 애정을 안겨주는 고양이와 그렇게 동거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인간과 더불어 가족,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적인 동물,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인 거다.

노년의 가장 행복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걸음걸이가 우둔하고 느리지만, 기력이 쇠잔한 노부부가 배우자와 손을 꼭 잡고 공원을 거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거기에 반려견이 옆에서 노부부를 따라가고 있다면 그 모습은 어느 명작보다도 더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일 게다. 노년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운 모습이 빛을 발하는 것은, 자연과 어우러진 한 폭의 명작이 탄생하기까지 노부부의 건강하고 지혜로운 삶이 있기에 더 아름다울 게다. 본시 반려동물이주는 행복도 크지만 보살핌도 만만치가 않다. 농부의 발걸음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사일처럼, 반려동물을 동행하기까지 자신들의 건강과 반려동물의 건강까지 자식 돌보듯 공을 들인다. 서로 동거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찾는 황혼.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 때문에 더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춘풍이 나뭇가지에 결렸다. 호젓하게 즐기는 오늘, 삶의 맛을 깊이 음미한 하루였다.`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 이 한 줄이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다. 쏟아지는 햇볕을 등에 지고 갓길에 서성였다. 한 줄 금 바람이 인다. 떨어진 꽃잎들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움켜잡으려는 듯 헛손질을 해 본다. 이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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