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04.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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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요즘 전염병으로 많은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고 자가 격리 시간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심리적 위기감이 생길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는 책이 있으니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다. 전염병 페스트로 인해 엄격하게 격리된 도시의 강요된 고독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희망, 절망, 외로움 등 인간본질에 대한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그들을 하나로 묶었던 공동체의 고리가 하나씩 끊겨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으며 재난 소설이라는 장르의 효시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실존주의 작가로 장 폴 사르트르나 프란츠 카프카 등이 있다. 마침 그림책 검색을 하다가 『변신』 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있었다. 표지도 벌레다. 앞뒤 가리지도 않고 주문했다.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영감을 얻어 지은 그림책이라고 한다. 『변신』의 그림책 작가 로렌스 데이비드는 이 책으로 `페어런츠 초이스 상'을 받았다. 그림을 그린 작가 델핀 뒤랑은 재미있고 유쾌한 일러스트로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심각한 상황을 가벼운 그림으로 해피엔딩을 예고한다.

원작에서는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던 그레고르가 벌레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자, 처음에는 동정하던 가족들도 점차 그를 혐오하고 냉대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속하였던 집단에서조차 존재를 부정 당하는 것으로, 현대인의 소외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책에서의 그레고리 역시 딱정벌레로 변했을 때 처음에는 가족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오직 친구 마이클만이 자기가 벌레가 된 것을 제대로 봐준다. 물론 놀라긴 했지만, 함께 축구도 하고 도서관에서 그레고리가 어떤 종류의 벌레인지 함께 사전을 찾아본다.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친구 마이클은 변함없이 그레고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원작의 가족보다 성숙한 초등학교 2학년이다. 그레고리와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의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는 현실은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는 사회를 반영한다.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안전한 취업과 결혼으로 부모(사회) 뜻대로 살아주는 자녀만이 인정받는 요즘 세태와도 비슷하다. 그레고르는 여섯 개의 다리, 딱딱한 피부가 낯설지만, 등굣길에 다리가 여섯 개라며 동생의 도시락을 들어준다거나 발밑에 지나가는 작은 벌레를 새삼 소중하게 생각한다. 여섯 개의 다리로 곱셈도 편리하게 해내고 축구 골키퍼 역할도 잘 해내면서 적응하려는 모습은 나에게도 도전을 준다.

같은 제목에 낚여 읽어본 그림책이긴 하지만 마음에 남는 여운이 잔잔하다. 원작의 『변신』을 읽으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쓸모없어지자 버려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생이 과연 가족과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롭게 다가왔을까, 또한 사회구성원에서 뒤떨어지는 인간은 아무렇게나 유린당하는 풍조가 참담하기만 했다.

전염병이 만연해지고 전 세계가 인간 실존을 위협하며 고립시키고 사람끼리의 소통을 막고 있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는 인간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전염병을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부조리라고 해석) 결국 맞서 싸워 이겨낸다. 등장인물 장 타루처럼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페스트와 끝까지 싸운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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