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을 향한 포퓰리즘
선진국을 향한 포퓰리즘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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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21대 총선은 현 시대상을 반영한 현상이다.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어수선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탄생한 투표연령 18세 하향 조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복잡한 시대상을 대변한다. 잠정투표율이 66.2%로 14대 총선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각자 지지하는 후보자를 꼭 투표해야 당선시킬 수 있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본인이 원하는 후보자가 당선되었든 되지 않았든 이제 우리는 결과물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자에게는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벽두부터 코로나 블루로 산천에 밝혀놓은 꽃불도 우리 안중에는 없었다. 총선이란 고개를 겨우 통과한 것인데 세상이 환하다. 현명한 국민과 건전한 정치인이 머리를 맞대고 이 땅을 가꾸고 수호한다면 지구촌의 시선은 무궁화 꽃 피는 한반도로 집중된다. 그러나 신은 질투가 많은지 인간 세상을 그냥 두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는 크고 작은 사건으로 변화무쌍하게 이어져 왔다. 어느 시대든 순탄하게 살아온 한 시대는 없다. 지금껏 큰 난국 없이 살아온 우리가 가장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코로나 정도야 거뜬히 이겨낼 우리가 아닌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청색 테이프가 붙은 곳에 1m씩 `거리두기'를 하며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하는 날이 내 생전에 또 있을까? 35개 비례대표 정당이 나열된 48.1㎝ 투표용지를 다시 접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연동형 비례대표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여 투표했다. 대한민국의 새역사는 현재의 기성세대가 써야 한다. 과거를 잡고 연연하는 어리석은 일은 두 번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철마다 과거의 사건과 낡은 집단의식을 거들먹거리는 후보자나 정당은 앞으로 배척해야 한다. 과거는 현재를 지탱하는 교훈이자 거울이지, 딱 붙어다니며 괴롭히는 질병이 아니다.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과거 속에 갇혀 살지,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다. 투표 결과를 통해 아직도 우리는 정치적으로 부모 세대의 연계 선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선된 정당의 지역적 색깔이 지구의 경도(經度)를 나타내는 듯 분포되어 있어 나를 슬프게 한다. 현명한 정치인과 지도자가 나타나 이 경계를 허물었으면 좋겠다. 총선으로 잠시 묻힌 코로나19 문제를 누가 먼저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22세기 선진국의 판도가 달라진다. 한국산 코로나 진단키트와 의료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세계인이 몰려드는 한국, 코로나19가 어쩌면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릴 효자가 아닌가 싶다.

이 기회에 경제도 정치도 국민의 의식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조기대응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지만, 현재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대체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를 대처하는 아베의 꼼수를 보면서 세계인은 지금껏 좋은 이미지로 간직한 일본을 평가절하한다.

성장하는 미래는 지난 과오를 참고로 할 뿐 들고나와 투쟁하지 않는다. 거짓으로 포장된 부정부패는 반드시 드러난다. 표심을 얻기 위해 정당마다 재난지원금을 설정했다면, 지금이라도 관뒀으면 좋겠다. 차라리 국민이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돈으로 선동하는 사회적 포퓰리즘은 미국 정부가 인디언 부족에게 내린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금배지는 어려운 구석을 골고루 비추라고 국민이 가슴에 달아준 것이지, 멋으로 달아준 것이 아니다. 대인은 주체적 삶을 살지, 종속적 삶을 살지 않는다. 21대 국회는 대한민국을 훤하게 빛내 줄 의원들로 활기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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