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오래된 미래
먼저 온 미래, 오래된 미래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 승인 2020.04.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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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출근과 동시에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출장 채비를 서둘렀다. 갖가지 사연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한발 늦게 출발하는데 사무실이 휑하다. 청주시 한 중학교의 온라인개학 준비 과정을 참관하기 위해 중등교육과 팀원들 대부분이 학교로 달려간 까닭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사면을 칠판으로 조성해 놓은 교실에서 원격수업 준비를 위한 연수가 한창이다. 빠짐없이 마스크를 한 탓에 눈만 빼꼼 보이는 선생님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선생님들의 눈빛이 사뭇 비장하다. 연수를 마치고 곧이어 실시간 원격수업을 참관했다. 눈앞의 선생님이 화면 속에도 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의 모습은 차분하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흐른다.

어색한 인사를 하며 학생들이 하나 둘 온라인교실로 들어왔다. 각자 있는 곳의 웅성거림이 여과 없이 들리더니 선생님의 첫마디에 이내 조용해진다. 화면 속 아이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선생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출석을 확인하고 수학수업이 시작되었다. 화면에 얼굴 보이는 것을 쑥스러워하던 아이들도 조금씩 표정이 편안해진다. 아이들과 대화 속에 수업이 이어졌다. 선생님의 질문에 의견을 말하고, 화면에 생각한 답을 적기도 한다.

처음 시도하는 쌍방향 원격수업인데 선생님도 아이들도 적응하는 속도가 놀랍다. 참관하는 선생님들은 말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온라인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배움과 성장의 장면을 꼼꼼하게 챙겨 눈과 귀에 담는다. 오프라인 공개수업 참관보다 몇 곱절 더 진지하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의도치 않은 변화를 가져왔고 학교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다급하게 학교와 선생님들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선생님들에게는 평생의 수업방식이자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학교와 선생님들은 머물러 있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발 빠른 변화의 움직임은 우려 속에서도 믿음과 기대를 싹트게 한다. 회피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선생님들이 든든하다.

분명 조금 먼저 온 미래의 모습이다. 성큼 우리 곁에 다가선 미래 학교의 모습을 엿보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오래된 미래'에서 과거는 과거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미래학교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학교와 배움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어진 환경이 열악할수록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느 강연에서 태초의 학교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둘러앉은 사람들 중 누군가 묻고 누군가 답하는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라는 강사의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들 중 누군가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학생이라 부르지도 않았겠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 학교의 시작이었으리라. 미래의 학교는 태초 학교의 모습을 더 잘 담아가길 바란다. 획일화된 콘텐츠 교육을 넘어 더 작은 대화와 배움이 곳곳에 무수히 꽃피길. 예기치 않게 먼저 온 미래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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