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을 타고 날아든 까치
봄바람을 타고 날아든 까치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20.04.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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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집 마당 살구나무꼭대기에 얼기설기 아주 잘 지어진 까치집, 노을이 걸린다. 이른 봄부터 나뭇가지를 날라 집을 짓기 시작한 까치 부부는 어느새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저택이다. 해넘이가 시작될 무렵이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까치집과 잔가지 사이로 비추는 노을의 풍치는 장관을 이룬다. 경관이주는 정취는 서정과 사색으로 물들게 하고 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까치는 어릴 적부터 친숙한 새였다. 유치를 갈 때면 빠진 이를 깨금발 들어 지붕 위로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줄게 나는 새 이 다오”하면서 이를 뺀 아픈 고통을 달래려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까치는 사람 곁에서 살기도 하지만 부지런한 조류다.

이른 봄, 까치는 나무에 새순이 돋기 전에 둥지를 튼다. 마치 농부가 봄이 오기 전에 밭갈이하거나 논을 파 뒤집는 것처럼 부지런히 둥지를 튼다. 농부가 전답을 누비며 밭둑의 과실수를 가지치기할 때 까치도 바빠진다. 잔가지를 물어다 신혼집을 설계한다.

살구나무에 가는 나뭇가지로 쌓아올린 둥지, 얼기설기 해보여도 강풍에도 끄떡없는 까치집은 부실공사가 없다. 까치는 태풍을 대비하기 위해서 강풍이 불고 비바람에도 아무 탈도 생기지 않는 견고한 집을 짓는다. 사람들한테 발에 차이고 별 대수롭지 않은 지저분하고 보잘 것 없는 하찮은 나뭇가지, 까치는 거센 바람과 맞서며 수없이 날갯짓하면서 나뭇가지 하나를 입에 물어 와 하나하나씩 쌓아 단단한 집을 짓는다.

얼마나 견실한지 나무 밑동이 부러지지 않는 한 까치집은 부서지는 예가 없단다. 그럼에도, 엉성한 까치집 틈새로 언뜻언뜻 햇살이 비추는 것을 보면 너무 허술해 보여 높은 나뭇가지에서 잘 견딜까 염려스럽다. 걱정과 상반되게 요즘 도심에서는 전봇대 꼭대기 까치집 철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까치들 탓에 자의든 타의든 정전이 되어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길조임에도 미운 가시가 콕 박혀 이리저리 쫓기고 있다. 과학혁신시대 조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도심에서 새들의 세계와 서로 공존할 순 없는 건지 먹먹하다.

산세가 깊고 산수경관이 수려한 괴산, 내륙 산악지대인지라 봄꽃이 다른 지역보다 한 박자 늦게 개화하는 우리 마을. 성큼 다가온 봄, 이제 조금 있으면 탱탱하게 영근 붉은 꽃망울이 팝콘 터지듯 여기저기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질게다. 살구꽃 꽃말이 `아가씨의 수줍음'이다. 머지않아 살구꽃이 피고지고 파랗게 이파리가 둥지를 감싸고 있을 무렵이면 까치네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아침을 열겠지. 상념에 잠긴 나, 마음은 벌써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살구꽃 꽃말인 수줍은 아가씨처럼 아기까치가 솜털을 벗고 꽁지깃이 길어지면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어깻죽지를 활짝 펴 날개 깃을 푸드덕 거리며 비상을 준비하는 모습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벌써 선하게 그려지고 입 꼬리가 올라간다.

선조들은 봄에 까치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그해 태풍과 장마는 물론 풍작을 예측했다. `까치집을 낮게 지으면 태풍이 잦다'는 속담이 있는데 기상에 민감한 조류, 우리 집 살구나무꼭대기에 까치가 저택을 지은 걸 보면 분명 올해는 풍년이 틀림없다. 뿐인가 예부터 길조라 불리는 까치가 울타리 안에 둥지를 틀었으니 은근 행운이 넝쿨째 들어온 기분으로 절로 흥에 겨워진 날이다. 어르신들은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했는데 혼탁한 요즘 `까치야, 까치야 날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지 않으렴.'속으로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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