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들에게 면목없는 선거판
18세들에게 면목없는 선거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4.12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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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18세 청소년들이 이번 총선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다. 54만8986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2%에 해당한다. 투표연령이 18세로 결정됐을 때 많은 새내기 유권자들은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국가로부터 성인 인증을 받은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아직도 그럴까? 지금 벌어지는 선거판을 보면서도 그들은 설렘과 자부심을 유지하고 있을까.

우리는 우선 어지러워진 룰에서부터 그들에게 면목이 없다. 비례의석만을 노리는 위성정당의 출현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해 내고는 정치사에 빛날 선거혁명을 이뤄냈다고 자화자찬 했다. 그러나 정작 선거에 돌입하자 위성정당을 띄운 통합당과 담합해, 그 혁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혁명은 엉뚱하게도 허경영씨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이뤄냈다. 중앙선관위는 전체 지역구의 30% 이상에 여성후보자를 낸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지원한다. 국가혁명당은 77개 지역구(30.43%)에 여성 후보를 공천해 보조금 8억4000여만원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 보조금을 받은 정당은 국가혁명당이 유일하단다. 이 웃지못할 코미디를 청소년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해 진다.

정책과 비전은 없고 막말과 술수만 난무하는 저질 선거운동도 청년 유권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을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차명진 후보의 끔찍한 발언은 그들의 설렘과 자부심을 두 동강낸 비수에 다름없었다. 그 막말의 주인공이 당의 배려에 힘입어 열심히 유세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청년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급조된 위성정당이 의원 빌려와서 수십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챙기는 장면도, 몇 되지도 않는 청년과 여성 후보자들을 승산없는 험지로 내보내는 비정한 공천도 페어 플레이를 기대하고 선거판에 발을 들인 새내기들에겐 실망스러은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거 사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 청년 유권자들에겐 실망할 겨를이 없다. 우선 지지할 정당보다 나를 대표할 정당을 찾아보길 권한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에게 지지하는 정당을 물으면 대답이 바로 나온다. 하지만 “당신을 대표하는 정당은 어디냐”는 물음에는 머뭇거린다. 반세기 이상 이 나라 정치체제의 근간을 유지해온 거대 양당제의 폐단이라면 폐단이다. 대체로 한 쪽을 선택하는 이유는 하나다. 다른 쪽이 싫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으로 나라 말아먹을 좌파 정당이라 싫고, 재벌과 결탁한 수구 정당이라 싫다는 식이다. 어느 쪽도 마뜩찮은 중도 무당층 유권자들은 덜 싫은 쪽이 어디냐를 놓고 고민한다.

정치를 독과점한 양당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주고받으며 사생결단의 정치를 펴온 결과이다. 그래서 두 정당은 지지층만 관리하면 되는 편안한 운동장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유권자의 30%에 달하는 무당파는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정치에 넌덜머리를 내 투표를 포기하거나, 투표장에 나와도 제3의 정파가 자랄 수 없는 척박한 토양 탓에 양자 택일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지층 규합 방식은 간단하다. 상대를 끊임없이 반대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정책의 방향이나 지향하는 가치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그 것들이 내 일상과 미래에 어떤 이득을 가져올 것인지 고민하고, 어떤 정당이 나의 이익과 가치를 지키고 확장시킬 것인지 냉정하게 따지는 영악한 유권자가 늘어나야 할 시점이다. 청년 유권자들이 당과 후보의 얼굴만 보지말고 속살까지 살피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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