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적분을 발명하였는가?
누가 미적분을 발명하였는가?
  •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 승인 2020.04.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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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김태선 물리교육학 박사·충북 특수교육원 과장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도구가 필요하다. 말과 글이 이웃과 소통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듯 과학자들은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는데 수학으로 소통한다. 자연에 대한 탐구가 깊어지던 17세기에 과학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지 상태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을 표현하기에 당시의 수학과 과학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을 식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획기적인 발명품이 바로 미적분이다.

예를 들어 대포를 쏘았을 때 계속 변화하는 대포알의 속도를 측정하거나 지구 온난화로 극지방에서 얼음이 얼마나 녹는지 파악하는 등등 모든 자연현상은 변화를 설명하는 도구가 있어야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적분이 획기적인 세기의 발명품이라는 점에 누구도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미적분은 누가 발명한 것일까?

뉴턴과 라이프니쯔가 그 후보자이다. 필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뉴턴은 과학자이고 라이프니쯔는 수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학과 과학의 뚜렷한 경계가 없었다. 어쨌든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쯔가 1684년 미분의 개념에 대해 발표했는데, 영국의 수학자들은 라이프니쯔가 영국의 수학자인 뉴턴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화를 냈다. 왜냐하면 뉴턴이 지인들에게 십여 년 전부터 미분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673년 라이프니쯔가 런던 왕립학회를 방문했을 때 뉴턴의 미출간 논문을 보았다고 믿었다. 1676년에 뉴턴과 라이프니쯔가 이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들어 영국사람들은 뉴턴의 편을 들었다.

반면 독일사람들은 라이프니쯔의 편을 들었다. 화가 난 라이프니쯔가 영국 왕립협회에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왕립학회는 뉴턴의 손을 들어주었다. 라이프니쯔는 서로 독자적인 연구였음을 주장하는 책을 저술하다 미완결 상태로 죽었다.

이 논쟁에는 뉴턴의 성격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연을 설명하는 그 유명한 뉴턴의 법칙이 서술되어 있는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조차도 출간하기 귀찮아해서 핼리의 간곡한 설득에 의해 간신히 세상의 빛을 보았다. 게다가 필자가 본 프린키피아(영문판)는 불친절하고 중의적인 표현을 지닌 기호의 사용도 많았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이 보기에는 불친절한 기술방식,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주변과 잘 소통하지 못했던 점도 논쟁을 키우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미적분을 배울 때 뉴턴의 표기방식이 아니라 라이프니쯔의 표기방식을 따른다. 그 이유는 뉴턴은 자신만 알아보면 되기 때문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기호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연구를 하다가 같은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고 1820년에는 미적분을 동시에 발명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발명이고 누군가는 발견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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