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
잔인한 달 4월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0.04.07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
하성진 부장

 

봄이면 으레 접하게 되는 시가 있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iot·1888~1965)의 `황무지'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엘리엇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그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해석은 많다. 다만 이견이 없는 것은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후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이면에는 봄이 오고 꽃이 피는 희망의 계절임이 분명하지만, 당시 유럽의 현실이 매우 절망적이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처참할 대로 처참해진 땅에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되레 그 봄은 잔인해 보였을 테다.

2020년 우리나라의 4월도 잔인하기 짝이 없다. 지독하게 모진 코로나19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충북을 엄습했다.

누구나 어디서든 마음껏 누려야 하고, 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벚꽃을 비롯한 봄꽃이 활짝 피었지만 그저 도화지 속에 수놓은 그림에 불과하다.

화목한 가족이,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벚꽃 구경하는 일상의 소소함마저 코로나19에 빼앗겼다.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을 앞두고 잔뜩 기대했던 8살난 꼬마들은 여태껏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입학 전 사둔 책가방은 한번 매보지 못한 채 방 한쪽에 박아둔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낱말과 숫자를 알아야 할 아이들의 손에는 책 대신 휴대전화가 쥐어있다.

입시지옥을 뚫고 나온 어엿한 새내기 대학생들도 캠퍼스에서의 낭만 대신 `집콕'에 따른 무료함에 빠져있다.

땀 흘리며, 콧노래 부르며, 일에 몰두해야 할 자영업자들은 당장 먹고사는 게 코로나19 감염보다도 더욱 무서운 문제가 돼버렸다.

모두가 잔인한 계절을 보내고 있는 동안 코로나19 국면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7일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 0시보다 47명 증가한 1만331명이다.

진단검사자 수가 1만500명으로 전날(5571명)보다 배 가까이 늘었지만 신규확진자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50명 이하를 유지했다.

갑갑한 일상생활에 지친 국민이 `코로나19 언제 종식될까'라는 푸념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는 가뭄에 단비 같다. 조심스럽지만, 확산추세가 마무리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희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5일 종료할 예정이었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간 연장했다.

병원 등에서의 집단 감염, 해외 유입이 지속하는 점을 고려할 때 마땅한 선택이다.

확진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는 분명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 안심단계는 아니라며 선을 분명히 긋고 있다. 사회적 약속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이는 폭발적인 지역사회 감염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칠 대로 지쳤어도 조금만 더 힘을 내기를 바란다. 자발적이고 엄격한 방역 실천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잔인한 4월이 지나면 행복한 5월이 찾아올 것을 손꼽아 기대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