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꽃이 피다
경계에서 꽃이 피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4.0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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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어스름한 빈집을 들어선다. 어둠 대신 꽃향기가 마중한다. 집안을 가득 채운 그윽한 향기가 매혹적이다. 유혹으로 이끄는 베란다에선 여러 대가 트럼펫을 불어대고 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송이. 꽃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지만 달리 표현이 안 된다. 땅을 향해 노란색의 나팔이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천사의 나팔꽃 앞에 눌러앉자 백합향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예쁜 장미는 가시가 있듯 강한 향기를 가진 꽃은 독을 품고 있다. 호흡곤란과 고열을 일으켜 소량으로 죽을 수도 있다니 놀랍다. 더 신기한 건 두 종류로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이다. 위를 향하여 핀 꽃은 악마의 나팔꽃이요. 또 고개를 숙인 겸손의 대가로 천사의 나팔꽃이다. 하늘을 곧추세워 거만하다 하여 악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는가 보다.

이 꽃은 낮과 밤의 경계에서 꽃이 핀다. 낮에는 시든 듯 보이다가 해질 무렵부터 꽃잎이 생기가 돌고 서서히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향기는 점점 더 짙어진다. 꽃의 긴 금관을 타고 와 나의 감관을 툭 건드린다. 마음이 일렁인다. 늦은 시간까지 잠잠해지지 않고 어느 경계에 머문다.

모든 것은 경계가 있다. 산과 들, 강과 바다에도, 나라와 나라가 국경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는 남과 북이 가운데 삼팔선을 두고 있다. 한 나라가 같은 민족끼리 반으로 갈라진 채다. 분단은 영역의 나뉨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반으로 쪼개놓아 실향민과 탈북민은 아픔으로 앓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線)을 떠올린다. 과감히 넘어선 인연은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아슬아슬 넘지 못해 주춤하다가 남이 되는 한계선. 거기 사랑은 미완(未完)의 지대로 남는다. 다시 친구로 돌아가기에 먼 길에 둘만의 벽이 놓인다. 전보다 더 아뜩한 거리가 생긴다.

삶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경계. 어쩌면 늘 그 선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안간힘으로 매달리던 것을 한순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힘을 내어 다시 결심을 다지는 것도 여기에 서서다. 누군가 좌절하여 땅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곳. 새로운 희망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느 날부터 시숙과의 경계가 생겼다. 밭이 붙어 있어 서로 넘나들던 사이였다. 농사의 훈수를 서로 주고받던 관계다. 양쪽을 드나들던 통로를 먼저 막은 형에게 화가 난 그이는 검정 차광막으로 장벽을 쳤다. 마주 보고 다툼도 없이 행동으로 조용히 나섰다. 남처럼 지내자는 통보가 된 셈이다.

사소한 오해로 그어진 단절이다. 일철이면 지척에서 남남인 양 지내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큰집으로 명절을 쇠러 가는 일도 없어졌다. 집안의 대소사에도 끼지 못한다. 형제와 긴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그이가 안쓰럽다. 말로는 속이 편하다고 하나 속내는 외롭다는 것을 나는 안다.

계절을 알려주는 전령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들에 도착했다. 노란 산수유가 밭의 경계에서 환하게 꽃이 피었다. 봄이 왔건만 둘 사이엔 아직도 한류가 흐른다. 한번 세워진 벽이 쉽게 허물어질 리 있으랴. 얼음이 녹았다 얼었다가를 반복하고 많은 감정이 교차하면서 조금씩 무너지겠지. 가슴 밑바닥에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함께 등산을 갔던 동락(同)의 시간이 가라앉아 있기에 그 시간을 믿는다. 두 사람을 막다른 길로 인도하진 않을 것임을.

산수유는 담을 두고 가지가 양쪽 밭으로 뻗어져 있다. 마치 화해의 손을 내밀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담 너머의 형을 향하던 가시눈이 온화해졌다. 퇴직 후에 어찌 보내는지 걱정되고 궁금해하는 그이에게서 봄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낀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연지(連枝)의 경계에서 꽃이 필 수 있기를 온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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