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낮은 곳으로부터
봄은 낮은 곳으로부터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0.04.06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검은 그림자에 쫓기고 있다. 아무리 도망치려 달리고 또 달리며 안간힘을 써 봐도 형체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는 어느새 나를 가로막으며 노려보고 있다. 공포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꿈이어서 다행이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내가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우리 동네에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이 발표되던 날부터였다.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자영업을 하는 우리 부부는 겁부터 덜컥 났다. 공개된 동선 근처 아파트나 주택은 남편이 수시로 배달을 다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남편이 감염되기라도 하면 그 파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두려웠다. 남편이 코로나19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 숨이 찼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한 시기이다. 또한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도 자세를 낮추고 인내해야 하는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아예 가게 문을 닫은 곳도 있지만 영업을 하는 가게들도 손님을 받아도 속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거리두기가 꼭 필요한 시기임에도 임대료라도 벌어볼 요량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을 같은 자영업자인 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우리 집은 배달 업종이라 주머니 사정이 조금은 나은 편이지만 불안하기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다 보니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땅속 낮은 곳으로부터 움직이던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깊숙이 찾아왔다. 나는 바람결에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혹시나 봄까치꽃과 별꽃이 고개를 내밀고 피어 있지는 않을까 나무 아래나 햇살 좋은 낮은 언덕 같은 곳을 두리번거린다.

우리 가게 앞 공원 소나무 아래는 나에게는 보물 같은 장소다. 해마다 봄까치꽃과 별꽃이 무리지어 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소나무 아래에 앉아 햇빛바라기도 하고 꽃들이 전해주는 봄소식을 들으며 봄맞이를 하기도 한다. 땅바닥에 몸을 붙인 꽃들은 사람이 뻣뻣하게 서서 봄소식을 듣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한껏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라 이른다. 그래야 푸른 하늘빛을 닮은 꽃잎과 쌀알 닮은 별꽃의 모습을 수줍은 듯 보여준다. 매섭고 시린 겨울 터널을 지나온 강인함을 여린 꽃잎에서 느낀다. 손끝만 닿아도 바스러질 것 같은 여린 꽃잎은 낮은 포복이 아니었다면 추운 겨울을 지나오지 못했을 거라 전해준다.

온 세상이 코로나19에 휘둘리고 있는 지금은 매섭고 추운 터널을 지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은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 모두의 곁에 찾아와 빛나고 있다. 봄보다 앞질러 찾아온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모두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왜 이런 두렵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한 번쯤은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깊게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또다시 봄은 모두의 곁으로 찾아올 테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