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모욕하는 정치
유권자 모욕하는 정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4.05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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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전무후무한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코로나 바이러스로 선거운동이 제한되며 후보자와 유권자의 거리가 멀어져 정보 교류가 없는 불통 선거가 되고있다. 거대 양당이 비례투표 만을 위한 위성정당을 띄워 유권자들이 대혼란을 겪는 점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정당투표 용지가 1번과 2번은 없이 3번부터 시작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유권자들이 숱하다. 축구경기로 치면 한 경기에 네가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뒤엉켜 뛰고있는 데, 경기가 시작되고도 적지않은 관객들이 어느 유니폼 끼리가 한팀인 지 구분을 못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유니폼이 다른 선수들이 한 팀이 돼 경기를 하면 안된다고 심판이 휘슬을 울리지만 이들에겐 소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국회가 준연동형비례제라는 복잡한 룰을 만든 다음에 이를 다시 비틀고 뒤집어서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기형적 선거방식을 탄생시킨 탓이다.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만, 지금 총선 판에서 국민은 동의하지 않은 룰을 학습하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을'일 뿐이다. 거리유세 등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는 선거운동이 어려워지다보니 정당마다 정책과 비전의 대결로 승부를 내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우선 내놓는 공약들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모호하거나 황당한 공약, 지난 선거에 써먹은 재탕공약들이 부지기수다. 비례전문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기본소득 60만원 지급 등 날림 공약을 내놨다가 논란이 되자 통째로 거둬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통합당도 울림을 주는 공약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보유세 경감, 법인세 인하, 남북군사합의 파기, 공수처법 폐지 등 과거로 돌아가자는 공약들이 태반이다.

그 중에서도 민주당의 도돌이표 공약은 압권이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종합부동산세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실상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감면을 공약한 셈이다. 서울 강남 등 부촌에 출마한 자당 후보자들을 지원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지난해 정부가 고강도 처방으로 집값을 잡겠다고 발표한`12·16 대책'을 손바닥 뒤집듯 부정한 모양새가 됐다. 종부세가 부과되는 1주택자는 공시가격만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주택 소유자들이다. 한 두석 더 얻기 위해 자신이 총리를 맡았던 정부에서 추진했고, 자신의 소속정당이 법안으로 발의한 부동산 정책을 서슴없이 훼손하면서 서민을 보듬는 진보정당을 자처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렇다보니 선거 쟁점은 정책이 아니라 막말과 그 말의 꼬리를 잡아 반격하는 저급한 차원에서 터지고 있다. 통합당은 공식 유튜브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교도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이자”고 했다가 삭제하고 사과했다.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의원은 통합당의 상징색을 포르노에 비유하며 비아냥 댔다가 도마에 올랐다. “투표용지가 길어 키 작은 사람은 제대로 들지도 못한다”는 황교안 통합당 대표의 발언은 신체비하 논란으로 번져 여야 간 설전을 낳았다. 정책 논쟁은 눈과 귀를 씻어도 찾기 어렵다.

유권자들을 얕잡아보지 않고서는 나올 행태들이 아니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환호만을 듣는 난청정치가 중도나 무당층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키워 이런 고민에 빠지게 하고 있다. “찍을 곳이 없는데 투표장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선거를 우리만의 리그로 만들어 달라”는 그들의 도발에 굴복할 수는 없다. 공보물이라도 꼼꼼히 숙독하고 TV토론도 세심하게 시청해 차선, 아니면 차악이라도 찾아 보자. 앞서 인용한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국민에게 정치를 바로잡을 책임과 의무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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