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가는 당신
추억으로 가는 당신
  • 류충옥 청주성화초 행정실장·수필가
  • 승인 2020.04.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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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류충옥 청주성화초 행정실장·수필가
류충옥 청주성화초 행정실장·수필가

 

봄바람은 불고 꽃은 피는데 마음 놓고 봄나들이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집 안에 가두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매화나 목련 그리고 산수유와 벚꽃으로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전국 방방곡곡의 꽃축제는 모두 취소되고 지금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느라 집에서만 지내자니 이것저것 들춰보게 되었다. 며칠 후면 있을 아버님 제사에 부모님 사진을 놓고 싶다며 남편이 옛 사진첩과 동영상이 담겨 있는 비디오 캠코더를 꺼내놓았다. 집안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근 20여 년을 묵묵히 침묵하며 견뎌 온 우리 가정의 과거 삶의 흔적들이 드디어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이다.

20년 전 캠코더를 구입하고는 몇 년 사용을 못 하고 처박아 두었다. 휴대하기 간편한 디지털카메라와 성능이 점점 좋아지는 스마트폰의 발달로 캠코더 사용이 불편해서 사용을 덜 했나 보다. 아직도 화질이 생생하게 나왔다. 캠코더를 TV로 연결하니 화면 속에는 지금 스물네 살이 된 큰아들이 네 살 귀여운 모습으로 조잘거리며 뛰어다닌다. 스무 살이 된 둘째 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뒤집기를 하며 울기도 하고, 첫걸음을 막 떼어서 보는 사람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게도 만들었던 추억도 들어 있었다. 유치원의 재롱잔치는 물론이고 아이들 생일 축하 장면 등 소중한 순간들이 숨어 있었다.

어떤 장면은 생소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들이 입었던 옷이나 장소들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찾고 있는 어머니 모습은 저 멀리 작게 스치듯이 보이고 말소리만 간혹 들릴 뿐 앞에서 제대로 찍은 영상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어머니 모습 좀 많이 찍어 둘걸….'하며 아쉬워하지만, 어머니를 더는 찍을 수가 없다. 내리사랑이라더니 어쩜 그렇게 온통 아이들만 주인공처럼 앵글에 잡혔는지 온통 아이들 사진과 동영상뿐이다. 부모님께 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더 달라고만 했지, 조금이라도 갚아 드릴 생각은 그 시절엔 왜 못했는지 자식은 늘 뒤늦게 후회를 한다.

추억 속의 내 모습은 지금보다 매우 젊긴 했지만, 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아이를 챙기는 엄마의 모습만 있었다. 남편도 찍어주느라 목소리만 있지, 모습은 아예 찾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이 모습이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보이지 않게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엄마는 늘 곁에서 챙기는 일상 가정의 모습.

그러고 보니 남편과 단둘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단둘이 여행을 다닌 적도 거의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 장성하였으니 우리 부부의 삶을 중심으로 초점을 맞춰 흔적을 남겨둬야겠다. 지금의 모습도 노년에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코로나19 방지책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여 외출이 꺼려지는 요즘 시기에는 앨범을 찾아서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앨범 속에서는 나의 엄마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귀여웠던 나의 아기도 만날 수 있다. 젊은 날을 돌아보며 지금 삶의 모습에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본다. 지금까지 힘든 삶을 잘 견디며 살아왔으니 보상으로 예쁜 옷 한 벌씩 사 입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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