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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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은 미래가 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과학적으로 나아갈 때, 인간이 추구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다.

현재진행형인 코로나바이러스도 생존하기 위해 변종 바이러스까지 기생시키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바이러스까지 생존경쟁에 뛰어든 마당에 지금 한국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아직도 진보니 보수니, 좌우에 연연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산업화·민주화 시대는 5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젊은이에게는 낡은 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을 거론하면서 건강한 젊은이를 동원하는 비굴한 꼰대 노릇은 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 살아온 시대의 기억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과거에 갖춰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계속 쓰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 진화한 인류가 근대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프레임을 바꿔놓았다.

코로나19에 이어 한타바이러스가 출현해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니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가 동시다발로 직면한 사회적 현상을 누가 먼저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위급한 시기에 얄팍한 꼼수로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지도자들은 놓쳐서는 안 된다.

인간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사회적 집단이다. 자연은 인간의 도움 없이도 잘 돌아가지만,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 활동하면서 변화를 추구한다. 보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며 자유롭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나 민족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체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을 잘 파악하고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 탐구하는 자들이다. 타인이 설정해 놓은 세계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거나 비판하는 자세가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며 도전하는 삶을 산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한국인이 당장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플라톤은 기호학을 모르는 자는 본인이 개설한 아카데미아 학교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보이지 않은 곳을 꿈꾸지 않은 자는 미래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문명을 창조해 나가는 문화 활동은 질문하는 것이지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은 내 안에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오직 나에게만 존재하는 독립적 존재이다. 주입식 교육과 대답에 익숙한 우리의 학습 태도는 일류가 될 수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 미래 세대들은 시대의 흐름과 잘 부합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양이 동양을 압도한 것은 바로 과학의 힘이다. 우리는 언제 까지 그들이 만들어놓은 가설을 좇아가야만 할까? 우리는 왜 질문하지 못하고 우리 삶을 변화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변화를 싫어하는 소극적인 자세이다. 베르그송은 사유와 지성,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는 직감과 체험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사람은 미래가 있다.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경험과 지식을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지식을 통해서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노예로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는 지적 활동을 하는 자신에게 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 불행을 안고 있다. 사회적으로 패러다임이 흔들릴 때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채워줄 새로운 유형의 인종이 출현한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영웅은 과연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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