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염화 2
세존염화 2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0.03.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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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洞口連平野(동구연평야)  동구에 평야는 이어져 있는데
樓臺隱小岑(누대은소잠)  백련암 누대는 작은 언덕에 숨었구나.  
居僧懶不掃(거승나불소)  거승은 게을러서 비질도 모르니
花落滿庭心(화락만정심)  정원에 꽃만 가득 춘심이어라.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백목련이 눈꽃송이처럼 새하얀 꽃봉오리를 터뜨렸네요.
이 시간에 살펴볼 공안은 제법실상형 공안인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2로 지난번 평창에 이어 게송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拈起花來(염기화래)  꽃을 들어 보일 때
尾巴已露(미파이로)  온통 드러났어라
迦葉破顔(가섭파안)  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알 수 있었으나
人天罔措(인천망조)  인간과 천상은 그 누구도 대꾸도 못했네.
  
옛날 석가모니께서 영취산 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대중들은 모두 침묵했지만 오직 위대한 가섭만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이때에 세존께서 설하시기를 “내게는 올바른 법을 보는 안목인 열반에 이른 미묘한 마음과 그리고 모든 실상에는 상(相)이 없다는 미묘한 가르침이 있이 있다. 그것은 문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오직 가르침 이외에 별도로 전할 수밖에 없기에 나는 이를 위대한 가섭에게 부촉하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석가세존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쌍벽을 이루는 두 제자가 있었지요. 한 분은 아난(阿難, Ananda) 존자이고 다른 한 분은 바로 가섭(迦葉, Kasyapa) 존자이십니다. 아난존자는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불릴 정도로 25년 동안 세존의 가르침을 받고 세존께서 설하신 말씀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섭은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고 칭송 받았는데요. 두타란 집착과 번뇌를 제거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치열할 수행을 말합니다. 곧 아난은 교종의 특성을 가섭은 선종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화두로 돌아가서 ‘실상에는 상이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하나이지만 우리 개인의 세계는 모두가 다르지 않습니까? 모두 다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세계이고 어느 것이 가짜 세계일까요?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더 나은 세계를 좇거나 불쌍한 아이들이 생각나서 하루하루 괴롭게 사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집착이라는 말입니다.
진짜 유일한 세계를 믿는 순간에 우리에게는 이미 괴로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인데요. 이 말은 곧 초월적인 세계마저도 꿈꾸지 않고 지금 여기서 자신의 삶을 곧바로 긍정하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세존께서 꽃을 들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집착에 사로잡혀 그 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였던 겁니다. 바로 이때 가섭만이 빙긋 웃었고 이를 세존께서는 알아차리셨다는 말이지요. 제자 가섭만이 꽃을 꽃으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요. 사실 주인공의 삶이고자 한다면 스승마저도 안중에 없어야 꽃을 꽃으로서 볼 수 있는데요.
어느덧 경자년도 3월이 되었습니다. 봄꽃들이 환하게 피어나듯이 우리네 삶도 밝고 여여하시길 빕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3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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