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소
미친 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3.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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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은 생각대로 살 수 없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다 행동에 옮긴다면 대부분 사람은 감방에 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마음으로 한두 번 정도는 사람을 죽여 봤으며, 매력적인 이성에 흑심을 품어 본다. 그런 생각까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죽이거나 이성을 탐하는 행위를 하면 감방 행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참고 억제하며 산다.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감추고 평온을 가장하며 겉과 속이 다른 채로 산다.

겉으로 평온하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 사람의 마음은 호수와 같다. 호수는 겉보기에는 맑고 잔잔하지만 그 바닥에는 온갖 침전물들이 쌓여 있다. 침전물을 파헤치지 않으면 호수의 물은 고요하고 맑으며 평화롭다. 그 호수를 과연 깨끗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호수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바닥의 침전물을 파내서 전체적으로 깨끗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오만가지 추악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극단적 느낌이나 정서, 생각들을 마음 깊은 곳에 남이 눈치 못 채게 숨겨놓고 있다면 그 마음은 청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밖으로 보기에 멀쩡하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악한 범죄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호수의 물을 깨끗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침전물을 남김없이 파내서 버려야 한다. 그걸 파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호수는 순식간에 흙탕물로 변하여 혼탁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마음 안에 가라앉아 있는 온갖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생각과 느낌을 파내기 시작하면 겉보기의 평온함은 사라진다.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추악한 자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눌렸던 이성에 대한 흑심은 고삐가 풀려 성적인 충동이 되어 참기 어려워지고,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나 생생해서 실제로 죽이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이유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진저리를 칠 정도로 자신이 싫어진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마음을 닦으면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흐르는 물처럼 여여(如如)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건 아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호수 밑바닥의 침전물을 파내는 것처럼 마음에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들춰내는 과정이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하면 극단적인 자기혐오의 느낌이 동반된다.

극단적인 자기혐오의 감정은 잠자던 온갖 갈등, 욕정, 충동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때 사람의 마음은 미친 소처럼 날뛴다. 날뛰는 미친 소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중성을 유지하면서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미친 소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신 마음 깊숙이 감춰져 있는 자기의 본 면목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하면 드디어 미친 소가 날뛰기 시작한다. 미친 소처럼 날뛰는 사람과는 얽히지 않는 것이 좋다. 미친 소는 상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지만 미친 소가 날뛸 때에는 곁에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이 없으면 자기 마음속의 미친 소를 날뛰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미친 소가 날뛰는 걸 제어하지 못하고 휩쓸려 가면 어떻게 될까? 경험에 비춰보면 그럴 경우는 미치거나 죽는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을 섣부르게 하면 미친 소에게 받혀서 망가진다. 그러니 차라리 시작을 안 함만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섣부르게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낫고, 종교를 잘못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종교를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잘못 믿으면 어떻게 되냐고? 요즘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특정 종교집단의 교주나 추종자들과 같이 된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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