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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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3.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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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
공진희 부장(진천)

 

전통건축에 대한 관심이 한창 피어 오르던 시절 강원도 지역 답사에 나섰다가 영월 주천에서 우연히 섶다리를 만났다. 섶다리를 밟자 어릴 적 추억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 왔다.

농번기가 끝나고 초겨울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섶다리를 만들었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이다.

소나무나 참나무로 기둥이 될 다리를 세우고 긴 나무로 건너질러 그 위에 소나무 가지 등 잔가지를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깔면 푹신푹신한 섶다리가 완성된다

한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섶다리 상판이 큰 물에 떠밀려가고 다릿발 몇 개만이 앙상하게 남아 이곳이 다리터였다는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시간이 흘러 이곳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된 다리가 섶다리를 대신했다.

콘크리트 다리의 등장과 함께 섶다리를 만드는 수고는 사라졌지만 함께 다리를 만들며 막걸리 한 잔으로 정을 나누던 온정도 사라졌다.

동네 형들은 이 콘크리트 다리를 세월교라 불렀다.

농부들이 고된 농작업을 마치고 신선이 되어 세월을 낚는 곳이었다.

이 다리 아래서는 장기 바둑이 한창이고 개울에서 갓 잡아 올린 피라미와 불거지는 훌륭한 매운탕감이 되어 주었다.

진천을 대표하는 농다리는 진천군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심천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응용하여 28칸으로 축조해 동양철학이 반영된 다리이기도 하다.

총길이 94m,폭 3.6m,교각의 두께는 1.2m이며 교각 사이는 80cm로 자주빛 자연석을 석회를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다.

교각을 작은 돌로 쌓고, 장마가 져도 다리 위로 물이 흐르도록 설계해 1000년의 세월에도 그 교각이 유실되지 않도록 축조한 토목공학적인 배려 등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매우 귀한 돌다리이다.

이러한 물리적 구조물로서의 다리를 뛰어 넘어 신화적 상상력이 낳은 오작교도 있다.

원래 직녀는 하느님[天帝]의 손녀로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해 하느님이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의 목동 견우와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매우 게을러지자 하느님은 크게 노하여 그들을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다시 떨어져 살게 하고 한 해에 한 번 칠월칠석날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은하수 때문에 칠월칠석날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까막까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다리는 통행에 장애가 되는 강,하천,계곡을 통과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지역과 지역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문화와 문화를 연결해주는 수단이다.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의 의미를 넘어 정신적 종교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비정상 회담'이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사람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잘 아는 독일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다니엘 린데만은 한국과 독일을 잇는 문화적 다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다.

나와 이웃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적당한 거리두기는 꼭 실천하되 이 위기를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과 연대의 다리는 천년 농다리처럼 견고하게 지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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