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잠시 멈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3.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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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엊그제도 죄인이었다. 어제도 죄인이 되고 말았다. 그저 사람들은 야단법석인 난장판의 단두대에 죄명도 없이 세웠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화살에 항의를 해보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다.

한산한 시골의 우체국에 이변이 일어났다. 매일 출근길에 늘어선 사람들로 띠를 이루고 있다. 느닷없이 코로나의 해일이 몰고 온 인파로 넋을 뺏긴 날들이다. 문도 열기 전에 마스크를 사려고 장사진을 치는 행렬이 낯설다. 추운 날씨에 아침 6시부터 기다리는 이들은 5시간을 기다린다. 더구나 노인들이 많아 거리에 세워 둘 수가 없다.

이들을 배려하여 안으로 들이자 사무실이 도떼기시장이다. 마스크 판매시간이 11시부터라 두 시간 이상 시장판이었다. 모두들 지쳐갔다. 이렇게 진을 다 빼놓고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일은 일대로 엉망인 채 사람들과 엉킨 몇 시간의 피로에 온종일 시달렸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한꺼번에 실내에 있음을 항변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지라는 말에 겁이 더럭 났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부터 밖에 줄을 세웠다. 창밖으로 영하 날씨에 동동거리는 모습이 들어온다. 실내에 있는 나로서는 바늘방석이었다. 시간은 왜 그리 더딘지. 나도 지루한데 사람들은 오죽하랴.

줄을 서 있던 이들은 뿔이 나기 시작했다. 울그락불그락 얼굴빛은 성난 야수였다. 왜 이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고 고함을 지르고 누구 맘대로 꼭 그 시간에 팔아야 하냐며 뿔로 치받는다. 아무리 우리의 상황을 이해시키려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의 분을 푸느라 가시 돋친 말을 마구 쏟아냈다.

그마저 사지 못한 이들은 겨우 적은 양을 가지고 농락하는 처사라고 따진다. 이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화풀이를 해대는 사람들. 마스크 때문에 애먼 우체국 사람들은 그들에게 죄인이 된다. “우리가 무슨 죄란 말인가요” 맞서 저항할 수도 없다. 덮어놓고 “죄송합니다”밖에 할 말이 없다. 코로나로 머리를 숙이는 날이 늘어만 간다.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뿔을 세워 심하게 치받던 이가 다시 마스크를 사러 왔다. 그때는 미안했다며 사과를 한다. 며칠을 선착순에서 밀려 허탕치는 바람에 화를 참지 못했다고 겸연쩍어한다. 목숨 줄이 된 마스크를 달라고 낫을 들고 쳐들어온 사람도 있었다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노라고 다친 마음을 위안하던 터였다.

도착순에서 커트 당하고 5부제도 이해 못 하는 할머니가 성을 내시며 들어온다. 몇 번이나 수요일이라 알려 드렸건만 잊어버리곤 노인을 놀린다고 씩씩거린다. 다섯 번째 헛걸음한 탓을 독설로 퍼붓는다. 마스크를 팔고부터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다. 오늘도 또 죄인이 되었다.

그들이 다 옳다. 또한,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마스크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흉흉해짐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서로가 이해하고 넘겨야 할 고비다. 우리에겐 지금, 잠시 멈춤이 답이다. 함께할 때 소망 같은 경구(警句)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삶에 있어서도 멈춤은 필요하다. 화가 났을 때, 분노가 차오를 때 잠시 멈추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비로소 길이 보일 텐데 말이다.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를 향한 원망을 잠시간 멈추어본다. 신기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절실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울어간다. 후벼 파인 마음의 무늬가 어루만져지고 그 자리에 꾸덕꾸덕 딱지가 안고 있다.

잠시 멈춤은 코로나로 인하여 죄인이 될 때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쉼이요. 명상(冥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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