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꿈
벚꽃의 꿈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0.03.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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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봄이면 내 고향 피발령 길은 벚꽃이 만발했다. 흰색에서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 꽃이 먼저 피는 것, 꽃과 잎이 거의 동시에 피는 것 등 대여섯 종의 벚꽃이 피었다. 그러던 산이 여기저기 벌목을 하는 바람에 서투른 이발사가 듬성듬성 밀어버린 머리 모양이다.

`잎새도 없이 꽃피운 것이 죄라고/ 봄비는 그리도 차게 내렸는데// 바람에 흔들리고/ 허튼 기침소리로 자지러지더니/ 하얗게 꽃잎 다 떨구고 서서// 흥건히 젖은 몸 아프다 할 새 없이/ 연둣빛 여린 잎새 무성히도 꺼내드네'(벚꽃 나무, 목필균)

시인은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꽃잎이 떨어진 다음 여린 새잎이 나오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벚나무의 종류는 3천에서 6천 종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은 왕벚나무를 비롯해 산벚나무, 털벚나무, 개벚나무 등 12~16종이 있다. 개벚나무와 산벚나무는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피는데 시인은 꽃이 먼저 피는 왕벚나무나 올벚나무, 벚나무를 보고 시를 읊은 모양이다.

그런데 가로수로 많이 심겨진 왕벚나무 원산지를 놓고 한·일간에 논란이 있었는데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1901년 일본의 마쓰무라가 `소메이 요시노(染井吉野)'라 부르는 왕벚나무를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을 붙여 발표했다. 보통 식물이 유래한 원산지를 인정받으려면 자생지를 입증해야 한다. 자생지란 그 식물이 자연 상태에서 자라고 있어야 하고 개체 수가 많아야 한다. 또 다양한 형태적 변이와 형질 변이도 중요하다. 이는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다양한 수령의 개체가 골고루 분포해야 한다. 또 유연관계가 가까운 종들이 많이 분포해야 한다. 그런데 마쓰무라는 왕벚의 자생지가 일본의 오오시마 지방에 자란다는 정도로 두루 뭉실하게 기록했다. 그러다 1908년 4월 프랑스인 타케 신부가 한라산에서 벚나무 표본 한 점을 채집해 베를린대학의 쾨네 박사에게 보내 왕벚나무임을 확인했다. 이 표본이 자생하는 왕벚나무로서는 최초의 표본이 되었다. 이렇게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놓고 한·일간의 신경전이 100여 년간 이어져 왔다.

그러다 1918년 우리나라에서 유전체 검사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왕벚은 별개임을 밝혀냈다. 우리나라의 왕벚은 모계로 올벚나무, 부계로 벚나무나 산벚나무가 자연적으로 교배해 생긴 잡종 1대로 밝혀졌다. 일본의 왕벚은 모계로 올벚나무, 부계로 오오시마벚나무를 오랫동안 인위적으로 교배해 만들어진 잡종이었다. 타가수분을 하는 벚나무의 특성상 자연적으로나 인공적으로 많은 교배종이 많이 생길 수 있기에 생긴 일이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벚꽃의 꿈, 유응교)

가야 할 때를 알아야지. 10여 년 동안 주절주절 떠들었으면 이제 그만 유능한 후배들에게 기회를 돌려야겠지? 그동안 읽어준 분들께 감사드리며. 달빛 밝은 벚꽃 길을 걷고 싶다.

곁에 말벗이라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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