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됩니다
생각대로 됩니다
  • 안승현 청주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3.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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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산업1팀장

 

거칠다 못해 삭막한 콘크리트 담벼락 아래, 색 바랜 아스팔트와 맞닿은 부분에 갈라진 작은 틈. 흙 알갱이 하나들이지 못한 채 깊게 패인 차가운 그림자만을 드리운 검은 선. 흐르는 빗물에 빌붙듯 간신히 축일만 한 보잘것없는 목구멍. 비질 한 번 지나지 않았을 남루한 공간에 한 치도 안 되는 꽃대 끝에 보라색 꽃을 달고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삼월 삼짇날 돌아오는 제비를 맞이하듯 피워, 이름을 얻은 꽃이 커다란 무채색을 배경으로 점을 찍듯 피었다. `이오'의 눈을 닮은 듯 슬프고도 아름다운 색의 점이다. 돌아온다는 제비는 소식을 끊었건만 매년 봄을 즐길 시점을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진 듯 자리하고 있다. 잎과 꽃대는 나지막하니 바닥에 붙어 피었다. 사랑하는 임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슬픔이 원줄기를 만들지 못하고 뿌리에 붙어 피었다.

화창한 봄날인지 늦봄에서 여름인지 계절을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화폭에, 주황색을 띤 누런 고양이가 검은 나비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쳐다본다. 작품에서는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고 있다는데, 검은 나비가 고양이를 공격하듯 놀리는 듯한 그림이다. 화면의 중심에서 오른쪽에 고양이와 나비가, 왼쪽으로는 바위와 패랭이꽃, 맨 아래쪽에 땅바닥에 간신히 자리 잡은 한 포기의 잡초, 분명 꽃망울을 달은 꽃대가 있건만, 색도 분명치 않다.

제대로 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픔, 본연의 아름다움을 깊숙이 담고 있기에 많은 설화를 간직한 이쁜 잡초이다. 제우스, 나폴레옹, 비너스와 연관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주변에서 늘 같이 해왔기에 불리는 이름도 너무 많은 풀 한 포기, 제비꽃이다.

꽃의 생김새가 물 찬 제비와 같이 아름답다 하여 `제비꽃', 오랑캐의 머리채와 닮은 꽃의 기부에서 나온 부리의 모습을 딴 `오랑캐꽃', 고사리처럼 굽은 꽃 모가지를 마주 걸고 끊는 놀이에서 `장수꽃', 클로버처럼 꽃반지를 만든 `반지꽃', 어린잎을 나물로 먹던 데서 `외나물꽃'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름만큼이나 번식력과 생존력이 강하다. 뿌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차나무 아래 씨를 떨구었다하면, 이내 한 무리를 이룬다. 차 꽃을 피우기도 전에 뿌리 부근에서 보라색 향연이 펼쳐진다. 생존력도 강하다. 원줄기가 없지만 뿌리는 직근으로 심근성이다. 뽀얀 뿌리에 잔뿌리가 무성하다. 혹한 겨울을 두꺼운 껍질 없이 이겨내는 이유다.

이 녀석의 이름 중에서 작품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름이 있다. `여의 초 如意草'다.

구부러진 꽃대의 모습이 물음표(?), 등긁개를 닮았다. 우리가 아는 효자손을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如意'는 가려운 등을 긁듯, 내 맘대로 시원하게 긁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삼원 중 한 분인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도'에 맨 아래쪽 땅바닥에 간신히 자리한 한 포기의 잡초, 여름에 피는 패랭이와 함께 등장한 봄의 제비꽃. 이 꽃은 그림에서 이야기하는 “일흔 살(猫, 고양이) 여든 살(蝶, 나비)이 되도록 젊음(石竹花, 패랭이꽃)을 잃지 말고 장수(바위)하시고, 모든 일이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바랍(如意草, 제비꽃)니다.”

지난해인지 꼬투리에서 튀어 운 나쁘게도 자리를 잘 못 잡았다. 좋은 양질의 토질에서, 너른 벌판에서, 다른 나무와 어울려 자라는 행운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화사한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보라색 제비꽃 옆,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 고양이가 퍼질러 누웠다.

제비꽃의 또 하나의 이름 `전두초 箭頭草'화살독을 푸는 데 사용되었던 약초다. 모든 문제는 풀릴 것이고, 만사가 생각대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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