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꽃
냉이 꽃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0.03.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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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하얀 꽃이 피었다. 논길로 접어드는 초입에 조금은 이른 냉이 꽃이 피었다. 엊그제 밭에서 잎사귀가 땅에 찰싹 달라붙은 냉이를 캐다가 된장국을 끓여 식탁에 올렸는데 어느새 냉이 꽃이라니 무언가 성급히 꽃을 피워야 할 일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자세히 보아야 눈에 띄는 꽃이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등 봄을 알리는 꽃들은 길을 걸어가다가 또는 집 근처 공원 같은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냉이 꽃처럼 작은 풀꽃들은 관심을 가지고 허리를 구부려 자세를 낮추어 들여다봐야 눈에 들어온다. 냉이는 겨울 동안 죽은 듯이 잎을 땅에 붙이고 봄을 기다리다 대지에 봄기운이 돌면 짙은 갈색 잎들이 초록색으로 변하며 땅에서 차츰 떨어져 나폴 거린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아닐까 싶다. 산촌의 봄은 봄나물로부터 오지 않았던가. 봄나물이라면 당연히 달래, 냉이, 고들빼기를 먼저 떠올린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들판에 나가보면 이미 봄나물들은 묵은 잎들을 떨쳐내고 새싹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게으른 마음을 다잡게 해주며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을 갖게 한다. 냉이, 달래를 넣은 된장찌개는 온 집안에 퍼지는 향기만으로도 이미 봄을 몸 가득 물들이고 추웠던 겨울을 멀리 밀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농한기도 없이 사셨던 듯하다. 농촌의 겨울은 농부들이 한가롭게 쉴 수 있는 계절이다. 주막집에 모여앉아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이는 동네 친구들 아버지, 그런 다음 날이면 어머니들은 몸서리를 치며 남편들 흉으로 수다가 오고 갔다. 아버지는 연탄보일러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땔나무를 하시느라 농한기에도 대가족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사셨다.

고향의 봄은 아버지 쟁기질 소리로 활기찼다. 이른 봄부터 논갈이를 위해 쟁기를 지고 소를 앞세워 논으로 가셔서 온종일 소를 어르고 달래가며 쟁기질을 하셨다. 여러 해 아버지와 호흡을 맞춘 암소지만 때로는 힘든 일이 싫은지 엇박자로 아버지를 힘들게도 했다. “이랴, 이랴”. “워, 워, 뒤로 돌아”그렇게 몇 마디 되지 않는 의사소통을 소와 나누며 일을 하셨던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개울을 건너고 골짜기를 울리며 메아리쳤다.

아버지 새참은 막걸리였다. 노란 한 되들이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안주라곤 김치나 마늘종 장아찌가 전부지만 어린 내가 종종 임무를 맡으면 막걸리를 쏟지 않고 아버지한테까지 가져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개울을 건너다보면 물고기에 눈길을 뺏기다가, 논둑길에 접어들면 노란 꽃다지 꽃, 씀바귀 꽃, 보라색 앙증맞은 제비꽃 등이 옹기종기 논둑에 앉아 자꾸만 발길을 붙잡아도 뿌리쳐야 했다. 언덕배기 한들한들 피어 있는 냉이 꽃은 눈에 확 띄게 예쁘지 않아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냉이 꽃은 우리 식구들 같았다. 화려하게 꾸밀 줄 모르고 덤덤히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다는 마음에서 일게다. 찬바람 맞으며 일찍 핀 냉이 꽃에 고향의 들녘이 일렁인다. 아버지의 푸르른 시간을 마음으로 조우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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