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0.03.2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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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고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봄이 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끝을 알 수 없게 전 세계적으로 악화일로다. 학교들은 4월로 개학이 미뤄졌고 전통 시장도 문을 닫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정에 없이 일을 쉬는 중이다. 센터 휴관이 2주에서 4주로 늘더니 다시 6주로 연장되었다. 바쁘게 움직일 때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집도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으니 여행하거나 친구를 만날 수 없다. 결국 집 안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작은 아파트인데 오랜 시간 살아온 탓인지 구석구석 쌓인 물건들이 가득하다. 뭐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탓에 보관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물건들도 버리지 못했다. 온종일 집 안에만 있다 보니 물건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떠오른 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갑자기 미니멀 라이프가 내 삶의 방식이었고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당장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못할 거라면 모든 걸 버려야 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물건이지만 막상 버리려니 물욕이 앞선다. 물건들도 아까웠고 집착도 버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 위로하며 제일 먼저 냉장고를 한 대 줄이기로 했다.

좁은 집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 세 대. 그 중 오래된 김치 냉장고를 한 대 처분하기로 했다. 김치 냉장고를 버리려니 그 안에 있는 음식물을 비우는 게 일이다. 음식 나눔으로 좋은 일도 하고 마트 가는 일도 줄어드니 냉장고가 비워졌다. 자리 차지하던 냉장고를 버리고 나니 큰일을 한 듯 개운하다.

다음 정리 대상은 책꽂이에 빼곡한 책들이다. 읽으려 사고 읽지 않은 책들도 많다. 다 읽고 마음의 곳간이 가득 채워져야 했는데 어느 순간 내 지적 허영물로 변했다. 오래된 책들 먼저 꺼내서 쌓아 놓고 보니 꽤 많다. 내심 부끄럽고 누군가에게 미안했다. 또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하루 이틀 버리지 못하고 고민했다.

다음은 옷들이다. 입으려면 입을 것은 없는데 옷장 안에 가득한 옷들은 다 누구 것인지. 스스로를 혼내며 옷 정리를 했다. 그다음은 부엌이다. 오래 전 사 놓고 아까워서 쓰지도 않았던 찻잔과 그릇들이 우리 집에 이렇게나 많았는지 나도 몰랐다. 있을 때는 사용도 안 하면서 버리려니 아까운 그릇들이 많았다. 앙증맞은 찻주전자는 구멍을 내어 다육이 화분으로 쓰면 예쁠 것 같아 또 망설였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려면 제일 먼저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집착이 남으면 멀어진다. 그렇게 아끼던 책과 옷, 그릇들이 내게서 사라졌다.

처음에는 아깝던 물건들이 버릴수록 묘하게 후련해진다. 빈틈없던 책꽂이, 옷장, 그릇장 등에 공간이 생기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가지고 내 삶을 보다 가치있게 만드는 방법을 잊고 산 것 같다. 지금 현재도 버려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내가 온전한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지는 못할 것을 안다. 단지 앞으로는 집착을 벗어나 생활이 간소해지면 삶의 여유는 그만큼 커질 것이라 기대한다. 내 미니멀 라이프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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