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연(順延)
순연(順延)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3.17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또다시 봄이 왔고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두 번의 봄이 오도록 뒷집은 아직도 빈집이다. 올해도 뒷집 뜰 안의 꽃나무에선 꽃을 피워 낼 터이고, 구분이 사라진 마당과 정원 여기저기에서도 키 작은 꽃들이 어지럽게 필 것이다. 어디 꽃만 피어날까. 들풀들도 영토 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무와 꽃들을 칭칭 감고 올라 꽃들의 잔치를 훼방 놓을 게 뻔하다.

아침부터 새소리가 요란스럽다. 뒷집으로 난 주방 창문을 열었다. 키 큰 노란 산수유나무가 화사하다.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산수유나무에는 꽃만 핀 게 아니었다. 회색빛 직박구리가 떼를 지어 꽃 사이사이 꽃인 듯 앉아 있다. 꽃을 따먹는 중이다. 그리도 맛있을까. 재잘재잘 나뭇가지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며 야무지게도 먹는다. 뒷집 주인 할머니가 계셨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을 이제는 쫓을 사람도 없으니 제 세상인 듯 노래가 절로 나오나 보다.

계절 따라 꽃은 피고 지고 제 역할을 다하건만 우리 사람만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다. 지금쯤이면 학교에서는 학기가 시작되어 분주하고, 거리도 봄을 맞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나고, 각 지역에서는 봄꽃 축제로 멀미가 나야 맞을 테지만 그 어디에도 봄기운을 찾아볼 수가 없다. 봄은 왔지만 봄을 맞을 수가 없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을 붙잡아 놓고 말았다. 나도 모든 수업이 중지되어 집에서 붙박이 신세가 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하는 일이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물론 가끔은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다니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즘은 온갖 매체들이 전 세계의 코로나 상황을 알려주기에 바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불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세계의 여러 나라가 한국발 입국자들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태가 전 세계로 번져 모든 나라들이 빗장을 단단히 걸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보다 더 죽음을 두려워하는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없을지 싶다.

불로장생, 인간은 오래전부터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많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도 모든 것을 이루었음에도 죽음만은 두려워 불로장생초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중세 유럽에서도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는 `무미야'를 구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의 많은 미라를 훼손시켰다. 그만큼 죽음은 인간의 모든 부귀영화도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불교의 반야심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법륜 스님은 《인생수업》에서 이 말을 바다와 파도의 관계로 풀어준다. 파도가 일고 사라지지만 사실 바다 전체로 보면 다만 물이 출렁일 뿐이다. 이처럼 바다 전체를 보듯 우리 인생도 관조하게 되면 삶도 없고 죽음도 없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결국, 삶과 죽음을 하나의 변화로 받아들이면 삶에 대한 욕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이다.

진달래가 분홍빛 입술을 뾰족 이고, 보송송하던 백목련의 몽우리도 하얀 얼굴을 부끄럽게 내밀고 있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봄꽃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 놓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모든 시작들이 미뤄지는 이때, 세상과의 아름다운 조우를 위해서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 지금 이 시간이 느리고 더디게 흐르는 듯 힘들겠지만, 이것도 삶의 작은 변화라 생각한다면 그리 힘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나마 다행일까. 매년 짧다 느껴지던 봄이 올해는 참으로 길게 느껴지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