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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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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다인종 사회
홍 석 조 <논설위원·변호사>

지난달 사망 33명 부상 21명 등 전 세계를 경악케 했던 버지니아공대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원 내 총기사건이었다는 점 말고도 범인이 한국계 출신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더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아직까지 범행동기와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파헤쳐진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정신병리적인 행동이라는데 크게 이견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언론의 태도는 총기소지, 이민자, 집단따돌림, 인종 갈등문제 등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민들의 깊은 사죄()에 대해 자신들의 내부문제라며 더 이상의 유감표명을 불편해 했다. 같은 혈통이라는 사실에 내내 마음 졸였던 우리네 정서로써는 미국언론의 그런 태도에 다소 놀랐지만, 정당정치인들까지 나서서 한·미관계의 악화를 우려했던 점은 분명 지나친 감이 있었고, 미국언론의 그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내심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같은 시기 한·미간 FTA 협상타결에 대한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반대투쟁 또한 더 이상 물러설 때가 아니었지만 버지니아공대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보수언론은 정부의 단호함에 불을 당겼고, FTA 반대투쟁은 언론에서 연일 쏟아내는 쇼킹한 버지니아사건의 잔재들에 묻혀버렸다.

그런데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벌어진 버지니아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라는 고정된 시각은 떨쳐야 할 것 같다.

국내 이주노동자만도 약 80만 명에 이르고, 농어촌의 경우 지난해 결혼한 남성의 41%가 국제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는 2010년에는 이주노동자 100만명에 외국인이주 인구는 2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1세대만 지나면 우리나라 역시 다인종사회로 들어설 것이다. 그동안 감추려고만 했던 베트남의 라이따이한 문제나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한국 내 혼혈자녀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더더욱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화재사건으로 10명의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불법체류자로 보호실에 수용된 그들 대다수는 재중동포와 아시아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관계당국은 이주노동자의 인권 등 구조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하고 다만 이 문제로 세계박람회 유치가 좌절되지나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우리네 시각이 얼마나 협소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외국인 이주여성과 혼혈인들은 다중의 곤란에 처해 있다. 인종적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임금체불, 인권유린 등 인권 사각지대에 갇혀있는 것이 그네들 삶의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탈북자들의 문제 역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서는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단식농성 중이고, 남북이산가족 문제도 11개월만에 상봉이 이뤄진다고 하니 문제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백인에 대하여는 열등의식을, 흑인이나 동남아국가들의 인종에 대하여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남북 분단의 서러운 역사 속에 같은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슴속 깊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다가오는 다인종사회에 한국민, 한민족(韓民族)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 어느 때보다 한민족이라는 중심을 잃지 않되 코스모폴리탄적인 넓은 사고를 가진 진정한 민족주의가 요구되고 있는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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