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0.03.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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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다른 여느 때보다도 그날은 왠지 일찍 눈이 떠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당으로 나가 세수를 하고는 곧바로 엄마를 졸라 아침밥을 달라고 보챘다. 사위는 어둑어둑 아직 동도 트지 않았는데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직 날이 새자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 가족은 이른 새벽밥을 먹었다. 나의 무조건적인 생떼에 부모님은 반 강제로 손을 든 셈이었다. 밥상을 물리고 한창 설거지에 바쁜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곤 또다시 나는 엄마에게 매달렸다. 며칠 전부터 벽걸이에 얌전히 걸려 있던 등 뒤로 리본이 달린 분홍색 외투를 이미 완벽하게 빼입고 새로 산 운동화까지 신은 채 방안을 활보하며 부산을 떨었다. 지난주 장에 가셨던 엄마와 아버지가 사다 주신 옷과 하얀색 새 운동화였다. 그날은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저절로 입가가 올라간다. 나는 장을 보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며칠 전부터 내 생애 첫 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당일 아침에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스스로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챙겼고, 아버지는 내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아주었으며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대문을 함께 나서 주셨다. 집 앞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침 햇살이 내리기 시작한 강가에는 서서히 물안개가 걷히고 햇살을 받아 펴지는 윤슬이 반짝반짝 나의 걸음을 빛내고 있었다.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입학식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학교는 이미 한차례 개학과 입학식 연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주 또 한 차례 연기로 다음 주까지 학교는 또다시 겨울 속에 꽁꽁 얼어붙어 동면이 길어질 듯하다. 이 같은 사정은 대부분의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현장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고 기숙사 역시 입사일이 뒤로 늦춰졌다며 서울에 있던 아들은 최소한의 짐을 싸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창 너머 너른 들녘에는 어느새 봄이라고 아우성인데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휴면이다. 평온했던 시간들이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하고 거의 모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이웃부터 직장동료들, 길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불신이 생겨나는 것 같아 마음이 어수선하다.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다. 개학은 물론 입학식까지 학부모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쉬엄쉬엄 하고 싶었던 일들을 찾아본다. 창문을 활짝 열어 겨우내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며 긍정의 봄기운을 받아들인다. 주말마다 찾던 도서관이 한동안 문을 닫는다니 그동안 사놓고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을 정리하며 찬찬히 책장도 넘겨본다. 모처럼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었으니 이참에 그동안 해 먹이고 싶었던 엄마표 집밥으로 심신도 단련시켜 준다. 함께 한 시간만큼 당연히 추억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학교는 개학을 할 것이고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병아리처럼 걸어 들어와 입학식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이 뻘뻘 땀 흘리며 뛰어놀고 있을 그때가 머지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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