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강가를 걸으며
봄날 강가를 걸으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3.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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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꽃이 피는 것은 순식간이다. 꽃망울이 맺혀도 곧 피리라고는 생각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꽃은 한 번 피기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이 한꺼번에 피어 버린다. 이렇듯 계절은 삽시간에 변하고 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도 어느 날 문득 아득히 멀어지고, 온 천지에 봄꽃이 만발하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겨우내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들을 떠올리곤 한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도 봄꽃을 보자 잊고 지냈던 친구가 생각났다.

봄날 강가를 걸으며(江畔獨步尋花)

江上被花惱不徹(강상피화뇌불철) 강가에 온통 꽃이 덮여 있어, 번뇌가 끊이질 않는데
無處告訴只顚狂(무처고소지전광) 이 소식 알릴 곳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네
朱覓南隣愛酒伴(주멱남린애주반) 남쪽 이웃 술친구를 찾아 달려갔더니
經旬出飮獨空床(경순출음독공상) 열흘 전 술 마시러 나가고 주인 없는 침상만 남아 있네

봄이 되어 날이 풀리자, 시인은 집 근처의 강가로 산보를 나갔다. 놀랍게도 강가는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모습을 꽃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라고 한 표현이 신선하고 탁월하다. 뜻하지 않은 봄의 절경을 접한 시인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이 희소식을 누구에게 전할 거며, 어떻게 알릴 것인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장 주변에 알릴 사람이 없었다. 조바심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마침 남쪽 이웃 마을에 사는 술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래서 급히 그 친구를 찾아 내달리어 그 집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친구는 열흘 전에 이미 집을 비우고 없었고, 방 안에는 주인 없는 침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시인은 결국 자신이 본 봄의 절경을 자랑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지만, 멀리 사는 친구를 찾아간 것만으로, 시인이 강가에 꽃 이불처럼 펼쳐져 있는 봄꽃의 향연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를 표현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봄은 서서히 오지만, 봄에 대한 느낌은 느닷없이 오는 경우가 많다. 봄이 온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름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화사한 봄꽃들을 보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봄꽃과 함께 사람들 마음속에 사그라들었던 희망과 감흥이 되살아나는 것만으로도 봄은 축복이 될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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