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러나
때로는, 그러나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20.03.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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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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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아침이 있다는 것은 삶이 인간에게 허락한 희망의 고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설령 그 작은 하루만큼의 희망이 저녁에는 실망으로 확인되어 버린대도 결국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어쨌든 또 다른 아침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생각.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반복되는 일이지만 아침은 매일 새로운 기회를 받는 경건의 시간이다.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면서 구입한 책 중에 열어보기 힘든 책이 있다. 숀탠이 쓰고 그린 『빨간 나무』다. 이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침을 맞이하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는 침통한 소녀의 표정은 내면의 나와 조우해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책장마다 나오는 빨간 단풍잎의 희망의 단서가 실제의 내 삶에서는 못 찾을까 봐 불안하기도 했다. 오늘 『빨간 나무』를 소개하며 끈적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숀탠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교민 2세다. 호주 국적을 갖고 있는 그가 교민으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여러 감정이 그림책에 잘 녹아 있음을 느낀다.

그림책 『빨간 나무』는 글 밥이 거의 없고 어두운 색감의 그림으로 한층 더 깊은 우울과 상실로 독자를 초대한다. 작은 소녀의 하루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어떤 하루와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있다. 희망 없는 아침을 맞은 소녀는 거리로 나오지만, 여전히 밝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뱉어내는 독백들 “아름다운 것들은 날 지나쳐가고,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 있는지, 세상은 귀머거리 기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따위의, 우리도 가끔 우울해지면 차마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하는 말을 활자로 박아 놓았다.

반복해서 보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책이다. 그림이 전해주는 상실감은 글 밥보다 힘이 세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종이배 위에서 부유하는 소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불안 불안하다. 그러나 그림책 장마다 숨겨진 빨간 단풍잎을 찾은 독자라면 그럼에도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끝내 놓치지 않고 있는 무언가가 소녀를 문밖으로 나가게 하고 위태한 삶에서도 희망으로 상징된 빨간 단풍잎을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희열일 것이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어떤 방송인의 말처럼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고 싶지만, 인생 전체로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라고 말할 것이다. 상황과 현실이 어떠하든 성실하게 내 곁에 있는 빨간 단풍잎 한 장 찾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 치열하지만 객기로 번지는 젊음으로 어떤 위험과도 당당하게 맞짱 뜰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림책 시작과 과정은 매우 초조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빨간 나무를 본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물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매일이 소녀의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보고, 살아보고 또 살아보고 말하자. 과정에서는 무엇도 섣부르게 판단하기엔 경솔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 어둠과 슬픔을 오롯이 살아낸 사람에게 찾아오는 생기 넘치는 변화가 인사한다. “그러다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그렇게 우리는 아름다운 빨간 단풍잎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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