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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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0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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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희망이어야 합니다
김 승 환 <논설위원·충북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997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화가 이홍원은 회의를 하다 말고 바람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원래 낭만적 방랑벽이 있는 그였기에 아무도 그가 어디 가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40분여 후에 상기된 얼굴로 회의장에 다시 나타난 수염쟁이 화가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신문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호기심에 어린 시선들이 그의 수염을 훑고 지나가자, '아, 어디를 다녀왔소'라고 심드렁하게 응대해 버린다.

훗날 알았지만 그는 모 언론사의 사장실로 직입하여 노기를 띤 얼굴로 책상에 그날의 기사를 내리치면서 따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가 있느냐는 그의 항변은 전투자세였음이 확실하다. 사태를 짐작한 언론사 사장께서는 역시 심사를 누그러뜨리고, 차근차근 분노 서린 말을 듣고 또 설명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언론사 사장께서 자사의 논조를 일방적으로 옹호했더라면 장비와 같은 성격의 이홍원이 벌인 활극(活劇)이 제법 인구에 회자될 사건으로 비화했을 것이다. 그 황당한 난입에 언론사 사장께서는 또한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하여간에 사려 깊게 상황에 대처한 언론사 사장을 뒤로 하고, 역시 안쓰러운 마음을 간직했을 이홍원은 그렇게 회의장으로 귀환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다. 정론직필의 언론이 대중독자의 기호에 맞는 기사만을 쓸 수는 없다. 통렬한 글도 쓰고, 눈물 섞인 미담도 쓰며 사건의 깊은 내면도 파헤쳐야 한다. 조직이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론의 비판과 비난이 아프고 따갑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언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좋은 일도 하찮게 변하고 의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격정의 이홍원처럼 저돌난입하여 따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울분을 토하면서 소주잔에 화풀이를 토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언론이 이 사회의 등불이 되지 않고 곡언아세(曲言阿世)한다면, 그 사회에 희망이 없다. 그래서 흥분하고 격노하면서 언론개혁에 종주먹을 내지르는 이홍원 같은 흥분과격주의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민주적이고 진정한 정론직필의 언론이 필요함을 깊이 깨우쳤다. 그러던 2005년 8월 15일, 충청타임즈가 진보적 민주언론의 기치를 걸고 창간되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그래서 나도 말석에서 종이 한 장을 드는 심정으로 충청타임즈가 진정한 진보적 민주언론이 되기를 기원했다. 일간신문을 창간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그간 충청타임즈 구성원들이 겪었을 고난의 십분의 일도 알지 못하는 나는 신문 경영의 측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어둔 밤에 길을 가듯이 서로 어깨를 겯고 걸었고, 또 센 여울을 건너듯이 손을 맞잡고 지난 2년을 지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지난 5월 4일 박재규 충청타임즈 회장께서 취임했다. 참으로 많은 뜻을 함의하고 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인생 문제라기보다는 충북지역 언론환경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에 큰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다. 충청타임즈 구성원만 모인 취임식은 굳은 의지에 반비례하여 조용히 치렀다고 전한다. 신문기자로 출발하여 방송인으로 명성을 쌓은 박 회장께서 충청타임즈의 회장이 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지역언론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보겠다는 것, 민주적 진보언론의 의지를 실현하겠다는 것, 언론의 정도를 가면서 행복한 직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 경영도 잘하면서 사회변혁의 횃불이 되겠다는 것 등 수많은 포부와 계획이 있으리라 믿는다.

독자로서 한 가지 청이 있다. 민족언론사와 지역언론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을 만들어주십사 하는 것이다. 약자, 소수자, 소외계층 등 민중을 생각하는 신문이면서 진보적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겠다는 창간정신을 더 높이 살려주실 것도 청한다. 충청타임즈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 창간하여 고난을 겪어왔기 때문에 전국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외람되지만, 그 주목에 값하고 높은 뜻에 상응하는 언론의 새 역사를 열어주실 것도 부탁드린다. 20년 후의 훗날, 충청타임즈를 포함한 지역언론들이 충북사회에 기여한 높은 공로(功勞)를 안주 삼아서 한 동이의 술을 비울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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