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에서 마주하기
거리두기에서 마주하기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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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꽃은 계절에 맞춰 순리대로 잘도 피는데, 우리네 마음은 어찌하여 아직 묵은 겨울인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세 끼 밥상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화두가 코로나다. 여기에 양념으로 끼어드는 게 있다면 4.15 총선이다. 첫 번째 화두로 함께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다가도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충돌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러니한 이 현상은 또 뭘까? 내 생전과 생후의 세계는 알 수 없지만, 현재에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은 내 생에 있어 처음 겪는 일이다. 방긋거리는 봄꽃과 마주하며 불편한 것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해 본다.

요즘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다니면 시선이 집중된다. 따가운 시선을 피하자면 외출을 금하거나 마스크를 써야 한다. 오늘 줄을 서며 언제 내가 줄을 섰던가를 반추해 본다. 줄서기도 경쟁인 시대, 줄을 선다는 것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전진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몇 번 서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번호도 순서도 없이 이어진 줄에 섰다가 헛걸음을 여러 번 했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줄서기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기관 등에 붙어 친분을 맺는 줄이 아니라 입장하거나 다수 사람이 불편함 없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줄 서기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줄은 서지만, 줄서기는 분명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공정하고 선의적인 경쟁이 필요하다. 출생연도나 생일, 키, 선착순, 번호 순서 등으로 줄을 세울 수 있다. 가끔 눈치껏 끼어들기를 하는 깜찍한 풍경을 보기도 한다. 어느 날 마스크 두 장에 싸움판까지 볼 뻔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에 언쟁이 잠깐 있었을 뿐 싸움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깟 마스크 두 장이 뭐기에…. 우리를 쪼잔하게 만드는지? 어려운 시기에 어르렁 거리며 싸움까지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싸움이나 언쟁은 가능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더라.

내 생에 마스크로 줄 서기는 처음이다. 줄 하면 엄마 등에 업혀 예방접종 하러 갈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고, 스스로 줄서 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식이다. 선생님이 앞사람 뒤통수만 뚫어지게 봐야 한다는 말만 찰떡같이 믿고 따랐다. 그 후 조회 시간이나 운동회, 급식 빵 나눠줄 때, 교련시간, 졸업식에 줄을 섰다. 성인이 되어서는 영화관이나 콘서트, 공연장 외에 매장 오픈 세일이나 반짝 세일에 줄을 서서 악착같이 물건을 샀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기호에 의해 자의적인 줄 서기였다면, 최근에는 한정된 수량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요즘 태어난 연도에 따라 요일을 정해 놓고 팔다가 보니 정해진 날짜에 못 사면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 일주일 후에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원활하게 유통되는 곳도 있지만, 내 주위는 경쟁이 치열해 마스크 사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은 여유분이 없어 뜨거운 시선을 받지 않으려면 제날짜에 무조건 사야만 한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첫날 옆 사람이 해당한 날, 아침 9시와 오후에 두 군데 들렀는데 매진되어 빈손으로 들어왔다. 집에 있는 사람은 자제하면 되지만, 매일 출근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있다. 호적상 태어난 연도를 확인할 바에야 오히려 주민등록에 기록된 대로 가족 수에 맞게 가정으로 판매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 오늘은 나와 얼마 안 있으면 군대 갈 아들이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금요일이다. 아침부터 어느 약국이든 서둘러 줄을 서야 한다. 왜 이 사태까지 왔을까? 참으로 참담한 노릇이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으니 멀지 않아 멈춰지겠지만, 이 상태로 이어진다면 코로나 블루 환자가 늘어날까 두렵다.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거리 두기”에서 “마주하기”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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