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이치
단순한 이치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3.1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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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군대에서는 여러 가지 운동 경기를 한다. 족구, 축구, 배구, 격투 등등. 처음에는 라면, 막걸리를 걸고 소대끼리 내기를 한다. 순전히 오락 삼아 친선경기 비슷하게 시작한다. 그런데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레크리에이션 차원에서 시작한 건데 나중에는 승부가 목표가 되어버린다. 라면이나 막걸리 같은 소소한 상품은 뇌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고 군대의 특성상 일단 이기고 봐야 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시합에 몰두한다. 이겨서 먹는 막걸리는 그렇게 달 수가 없고, 진 팀은 완전군장을 꾸려서 연병장을 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소대들의 경쟁의식 때문에 소대장들은 물론이고 소대원들끼리도 뜨악해진다.

중대장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별로 보기가 좋지 않다. 중대 단위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구성원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으면 팀워크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대장은 옆 중대에 시비를 건다. 돼지 한 마리를 걸든 막걸리 열 말을 걸든 조금 큰 내기가 벌어진다. 자연스럽게 이 경기는 앞의 소대끼리의 싸움보다 훨씬 살벌 치열해진다. 이전에 뜨악하게 지냈던 소대원들이 언제 그랬냐 싶게 힘을 합쳐 옆 중대와 싸운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어 외부의 적과 가열 차게 싸운다. 중대의 내부 단결이 이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대대장이 보면 어떨까? 중대들끼리 싸워서 분열되는 건 결코 좌시할 수 없다. 그러면 대대장은 옆 대대와 내기를 걸어 외부와 싸움을 붙인다. 군대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 시합은 사생결단의 싸움이다. 원수처럼 싸우던 중대들끼리 언제 싸웠나 싶게 일심으로 합심해서 다른 대대와 일전을 벌인다. 이때 1중대원이 내부 싸움에서 적이었던 2중대원을 원수처럼 취급하여 외부의 적 앞에서 2중대의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대대장은 물론이고 1중대장에게도 엄청나게 까이고 향후 군대생활에 애로사항이 많아진다.

리더들은 이렇게 내부 투쟁이 격화하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힘을 결집시킨다. 왜 이렇게 할까? 사람들은 외부의 적 앞에서 일치단결해서 대항하는 것을 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단순한 이치이다.

이걸 작금의 우리의 상황에 대입시켜보자.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주제 둘을 꼽으라면 코로나19와 총선이다. 뭐가 우선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는 자연재앙이다.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들은 일치단결해서 맞서 왔다. 우리도 코로나19라는 외부의 적 앞에서 일치단결해서 맛서 싸우는 것이 최우선과제이다.

코로나19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총선이 먼저일까? 명백히 아니다. 특정 정파의 승리를 위해 코로나19에 대한 전 국가적 대처능력을 약화시키는 작태는 그만둬야 한다.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야 했다는 불필요한 논쟁, 신천지 집단에 책임을 묻는 것이 지역감정 조장 행위라는 억지주장,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방역에 실패했다는 억측, 국민의 공포와 위기감을 조성하여 특정 정당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시도 등은 모두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를 정쟁으로 이끌어가는 작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태들은 코로나19라는 외부의 적 앞에서 자기 정파의 승리를 위해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다른 정파를 물어뜯는 것과 같다.

총선승리라는 이익을 위해 코로나19 퇴치라는 대의명분을 저버리고 상대의 발목을 잡고 물어뜯는 일을 행하는 자들은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적전분열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이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목전의 이익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져서 단순한 이치를 까먹고 정쟁을 일삼는 인간들은 언제나 국민의 철퇴를 맞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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