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적
보이지 않는 적
  •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사무처장
  • 승인 2020.03.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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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사무처장

 

그날 몇 시간째 부대 담벼락에 기대어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방한복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차서였을까, 계절은 3월로 접어들었건만 봄은 아직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적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담장 너머에는 좁다란 오솔길을 끼고 서너 필지의 논이 있고, 그 황량한 논을 지나면 작은 개울이 있다. 적은 아마 그 개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우리의 담을 넘으려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논의 곳곳에 쌓아 놓은 짚가리 뒤에까지 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유사시에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 년에 두어 번씩 침투 및 습격과 부대 방어 훈련을 했다. 부대원을 두 편으로 나눠 한쪽 편은 방어하고 반대편이 그 방어벽을 뚫고 침투해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것이다.

방어하는 쪽은 숫자가 월등하게 많아 부대 울타리를 몇 미터 간격으로 빙 둘러싼다. 침투하는 쪽에서는 그곳을 통과해 지휘본부나 탄약 창고에 `폭파'딱지를 붙이면 상황이 종료된다.

훈련이 끝난 뒤, 지는 편은 혹독한 대가(얼차려)를 치러야 했기에 어느 한 편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창과 방패의 치열한 전투가 되곤 했다.

훈련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초승달이 뜨는 일기가 좋지 않은 날로 택일된다. 임무에 들어가기 전에 양쪽은 모두 얼굴에 검은 칠로 분장을 한다. 침투하는 쪽에서는 색깔 있는 계급장을 떼고 부대마크가 없는 훈련복으로 갈아입는다. 조그만 소리라도 날 만한 물건은 일체 소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본부대에 근무했던 나는 늘 방어하는 쪽에 편성되었는데, 그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숨어서 적을 감시해야 하는데, 한 곳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무도 사람같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부스럭'하며 청설모나 밤 고양이가 지나가는 소리, 심지어 바람에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추위와 졸음을 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훈련은 침투하는 쪽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지휘본부나 탄약 창고에는 종종 `폭파'딱지가 붙어 있었다. 진 쪽의 부대원들은 얼차려를 받았다. 더구나 상대방이 침투했던 동선을 지켰던 부대원은 같은 편 동료로부터도 모진 질책을 감수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너무 무섭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창밖을 어슬렁거리고 있는지, 턱밑에 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감염 확진자는 수천 명으로 늘었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입에는 마스크를 방독면처럼 쓰고 가는 곳마다 살균제로 손을 씻는다. 외식도 이미 금기사항이 됐고, 사람이 많은 곳을 가급적 가지 않는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기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면 엘리베이터도 시내버스도 선뜻 이용하기 두렵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 바른 행동이 되고 있다. 그렇게 정상적인 사회활동도 멈추어 가고 인간관계도 단절되어 가고 있다. 이 지루한 전염병과의 싸움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우리는 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TV채널을 돌리다 한 곳에 멈췄다. 빌딩은 무너져 내리고 도로에는 풀이 무성하다. 황폐한 도시에는 생명력 강한 야생동물만이 살고 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물과 전기가 공급되는 한정된 장소에서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류의 멸망은 핵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난처럼 결국 인간들의 지나친 탐욕에 의해 초래되고 있었다.

집에 틀어박혀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있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문은 단단히 걸어 잠갔다. 봄은 창밖에 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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