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과 성찰, 위기의 강을 건너는 법
머무름과 성찰, 위기의 강을 건너는 법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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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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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 지 어언 50일이 지났다. 불안과 두려움, 혐오와 갈등, 그리고 격려와 희생과 봉사가 무작위로 교차하는 사이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마스크로 얼굴을 두껍게 가리고 `침묵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공공장소는 차단과 봉쇄가 되었고, 일상은 그럭저럭 계속되고 있으나 얼굴을 가린 것처럼 스스로를 격리하는 조바심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니 지겹고 짜증스러워 코로나19에 대한 글은 쓰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피할 길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명징한 원인은 여태 알 수 없다. 박쥐와 천산갑이라는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 바이러스가 매개가 된 것이라는 추정이 있으나, 이마저도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다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호모 사피언스의 탐욕에 의한 환경파괴와 공존을 무시하는 동물 영역에 대한 파괴와 침범, 그리고 지독한 육식의 탐닉이 가져온 재앙이라는 것이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백신의 개발을 통해 치료와 예방의 지름길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인류의 숙제임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침범하게 된 원인과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인류사가 그렇듯이 원인을 철저하게 가려 성찰하는 일에 호모 사피언스는 게으름을 거듭거듭 되풀이해 왔다.

성장과 발전, 자본적 탐욕의 세계로 직진과 과속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왔던 대한민국은 특히 원인이거나 근본에 대해 좌고우면하거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에 대한 성찰이 크게 부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 사이를 차단하게 되는 마스크를 사는 일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끝내 5부제의 분할과 분리에 그나마 안심하는 시대를 사재기의 탐욕과 공생하며 살고 있다.

내가 걸릴 수 있고, 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환자라는 말 대신에 확진자라는 믿음직한(?) 용어로 분리시키고, 시시각각의 동선을 공개하면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는 일과, 파괴되는 개인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일인가. 역지사지. 그 낙인이 나에게 해당되더라도 말이다. 최근의 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주변에 감염자가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보다 `내가 확진자가 되어 비난을 받거나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음은 의미심장하다. 아노 칼렌은 <전염병의 문화사>에서 `(전염병을 피할) 마법의 도시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행태'를 경계해야 할 우리 안의 “가장 무서운 약점”이라고 진단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19의 위기를 국민의 슬기로 잘 극복하며 변곡점이 멀지 않았음을 조금씩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치적 이해득실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맨 먼저 맑은 얼굴을 내민 `우리가 아산이고 진천이다'라는 포용과 아량, 그리고 용기가 있었고, 기꺼이 병실을 내준 `빛고을 광주'의 보은과 너그러움이 있으며, 권위적이고 독선적으로만 여겨졌던 의사들의 임전(臨戰)과 같은 거룩한 봉사도 있다. 또 최근에는 `마스크 양보하기'라는 슬기도 있으니, 나라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움직이는 국민의 성찰이 실로 숭고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50여일을 스스로 조바심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차단과 격리의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일상의 괴롭고 고단함을 어느 정도 더 견뎌내야 한다.

이 시기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뒤안길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성찰하며 위기의 강을 건너는 국민의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통해 (폐허에서) `공적 삶과 시민사회에 대한 열망', `공동체적이고, 융통성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이타주의의 희망을 말한다.

안전을 위해 문을 닫은 도서관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책을 배달해준다면 이 위기의 시간을 성찰을 통해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머무름과 성찰'을 위해 청주시의 서비스를 기대한다. `문화도시', `책 읽는 도시'는 위기에서 더욱 빛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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