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과 선, 그 아름다움
여백과 선, 그 아름다움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20.03.10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계절의 끄트머리에 섰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끝에 닿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는 계절의 감각 새로운 계절이 오는 걸 실감케 하는 날이다. 마을 끝자락의 농수용 웅덩이도 만수(滿水)다. 겨우내 툭 구부러져 웅크리고 있던 연밥도, 쭉 늘어져 있던 검으직직한 연잎도 기지개를 켜는 양 얕은 물살에도 일렁인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연줄기의 이파리는 물 위에 둥둥 떠 환상의 반영을 이룬다. 웅덩이 언저리 한쪽 포도 넝쿨이 어우러진 지붕의 물밑그림자는 한 폭의 수목 화를 이룬다. 목가적인 이곳, 화첩기행을 온 것 같다.

집이 주인을 닮은 걸까, 주인이 집을 닮은 걸까? 가득한 골동품수집과 고가구, 집안에 들어서자 자연이 깃든 깊고 평안한 소나무향이 그윽하게 안긴다. 눈을 감으면 절로 자연경관이 드리워진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거실 한편, 서각액자와 연필로 선을 이용한 데생의 주인장초상화, 물감으로 화려하게 덧칠된 초상화가 아닌 오로지 명암으로만 묘사한 초상화는 묘한 환상의 어울림이다. 소곳이 한참을 데생초상화에 눈길을 떼지 못하곤 난 매료됐다.

오로지 연필로만 그린 초상화, 선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연필로 표현된 명암 그리고 섬세한 기법과 그라이데이션 효과에 넋을 놓았다. 색깔도 없는 연필 하나로만 명암을 넣어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루는 데생의 터치, 섬세한 입술선의 보일 듯 말 듯한 선의 터치, 생동감 넘치는 눈동자의 표현, 그 선의 마력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이상야릇한 마음을 사로잡은 초상화에 눈길이 머물렀다. 담소는 늦도록 이어졌고, 난 탁자 모퉁이에서 끄적끄적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렸다. 낮에 보았던 웅덩이에 연잎반영은 물로 언저리에 포도넝쿨이 어우러진 지붕까지 나름 섬세하게 그려 집으로 가지고 왔다.

막연하게 미술이란 공간 속에 미를 표현하는 예술로 미지의 탐색 그리고 창조적인 창작세계의 도전이라 여겼건만 달랐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더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데생에 도전했다.

미술 시간이면 구도를 잡느라 폼을 잡던 학창시절.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우린 수업시간이면 정물화 소재인 과일을 서로 먹으려고 아옹다옹했다. 명암, 선긋기의 매력에 심취되기보다는 높은 미술점수 받기에만 급급했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니 어쩜 그때부터 미술에 약간의 제주가 있었는지 남달리 관심도가 높아 열정적으로 임했었다.

그 기억을 되새기며 이젤 앞에 앉았다. 나이가 먹으면 세상이 보이고 자연이 보인다더니 이제야 관심 밖이었던 연필선의 데생, 독립성을 지닌 작품으로 비로소 여백과 선의 아름다움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빛과 어둠의 차이도 보였고 또 다른 세상에서 난, 날 새는 줄 모르고 몰두했다.

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 했다. 봄이 다가오면서 목가적인 그곳이 선하게 그려지는 나날, 이젤 앞에서 선을 긋는다. 실바람이 부는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별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림으로 만드는 세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어설픈 선의 터치, 더디게 진보되지만 머지않아 데생의 명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넌지시 기대해 본다. 여백이 아름다운 오늘, 바람결이 참으로 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