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봄
느린 봄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03.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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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온통 마스크 세상이다. 거리에는 정적마저 감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렬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누굴 만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형편이 되어 버렸다. 예전 같으면 봄 소식에 덩달아 어깨가 들썩이고 남겠건만 연일 들려오는 코로나19의 확산이 모두를 움츠리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흉흉한 영화의 줄거리인양 두려운 시간들로 이어지고 있다.

꽃샘추위마저 기승을 부린다. 쉽사리 두꺼운 외투를 벗을 수가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챙기고 있다. 아직도 봄이 멀기만 한 기분이다. 봄의 환영歡迎속에 취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계획들도 저절로 뒷걸음질을 하고야 말았다. 불청객인 코로나19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랴. 시시각각 눈과 귀는 뉴스를 떠나지 못한다.

두꺼운 땅을 헤집고 파란 싹이 올라섰다. 세상의 복잡한 소식을 뒤로한 채 평온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연의 이치는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보며 환호하기보다는 애처로운 심정이 든다. 모든 것이 생성되고 환희로 가득해야 할 봄의 전령 앞에서 걱정만 늘어갈 뿐이다. 곳곳에 가라앉은 침묵들마저 한 몫을 더한다.

성큼 다가온 실제의 봄이 부럽다. 아직 사람들 틈에서 신음하고 있는 일상의 봄은 언제쯤 기지개를 펴고 안정을 되찾아 줄까. 모두들 사는 일이 힘들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그중에 마찬가지인 나도 작게나마 한목소리를 거든다. 느리게 오는 일상의 봄이 이르기를, 봄이 활짝 열리기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전하는 듯해 조바심을 멈출 수 없다.

느린 봄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 내리라. 가고 오는 시간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기뻐하리라. 약간의 여유에도 마음을 편하게 갖고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데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이리라. 피부에 닿는 봄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제자리로 찾아든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길 가운데 사람들이 쌓아 놓은 여러 가지 염려들도 함께 스러졌으면 더욱 좋겠다.

미뤄둔 청소를 시작했다. 구석구석 쌓아 두었던 불필요한 짐들도 정리한다. 몇 시간 동안 치러낸 뒷자리는 말끔하다. 상큼한 기분이다. 온 나라가 침체되어서 들리는 소식조차 어두운데 창을 여니 청정한 바람이 가지 끝에 찾아와 있다. 잡히지는 않아도 봄은 보이는 것이었다. 땅에서뿐 아니라 마음 밭에서 언제나 꿈틀대고 있는 희망의 전령이었다. 정물처럼 온 사방에 모셔 놓고 봄이 지닌 의미에서 지혜를 구하고 싶은 시간이다. 반드시 희망을 생성해내는 힘이 있으리라 믿으며 또 하루를 일어선다.

주춤대는 봄을 숨죽이며 바라본다. 그나마 되돌아갈까 두렵다. 느리게 올지라도 환한 낯빛이길 기대하며 하늘을 향한다. 언제나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물 흐르듯 조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안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과 달리 올해의 봄은 한참 더딘 걸음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부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마중할 준비를 해야겠다. 기다린 만큼 찬란한 날들이 다시 우리 앞에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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