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와 대구
덩케르크와 대구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3.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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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조국'. 그 분이 아니라 영화 `덩케르크'(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나오는 대사다. 많은 관객들이 이 한마디를 영화에 나오는 가장 인상적인 대사로 꼽는다. 1940년 5월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은 막강 화력의 기갑부대를 앞세워 프랑스·영국 연합군을 몰아 붙인다. 이들이 후퇴를 거듭한 끝에 다다른 곳이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덩케르크. 좁은 해협 너머 영국땅 도버가 보이지만 수송선이 없는 그들에게는 벼랑끝에 다름 아니었다. 무려 40만 병력이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돼 독일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함선을 보내 그들을 구출하기로 한다. 덩케르크 해안의 제공권은 당시 세계 최강의 독일 공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적의 폭격기 밑으로 배를 보내 바다 건너 병사를 탈출시키겠다는 무모한 작전이 시작됐다. 실어나를 함정도 턱없이 부족했다. 도버 해안의 민간 선박이 징발됐다. 화물선과 유람선, 요트, 어선 등 수백여 척이 병력 수송용으로 동원됐다. D데이를 맞아 구축함을 필두로 각종 군함과 징발한 민간 선박이 수송선단을 이뤄 도버를 출발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징발 대상에서 제외된 소형 선박들까지 뒤를 따랐다. 해군의 만류 방송도 직접 자신의 배를 몰아 작전에 참가하려는 주민들을 막지 못했다. 군함 200척에 민간선박 600척 등 800여척이 덩케르크로 향했다.

`덩케르크'는 바다 건너 해안에 고립된 병사 수십만명을 철수시킨 다이나모 작전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다. 애타게 바다를 응시하던 덩케르크의 영국군 사령관 고트 장군의 시야에 거대한 선박 집단이 들어왔다. 그는 무엇이 보이느냐는 부관의 물음에 “조국”이라고 답했다. 열흘간의 작전에서 투입된 배의 4분의 1이 침몰되거나 파손됐다. 그러나 그 희생으로 병사 33만8000명이 영국으로 무사히 철수했다. 이 병력이 나중에 유럽 전선의 판도를 바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엽합군 주력이 된다. 고트 장군에게 자신들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오는 국민들을 대신할 말은 조국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도 지금 대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많은 의료인들이 감염 위험을 무릎쓰고 의료자원이 부족해진 대구를 찾아 코로나19와 사투하고 있다. 안식년을 보내던 60대 간호사는 만류하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대구의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구를 향한 국민들의 응원과 후원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힘내라 대구'라는 성원을 담은 마스크와 성금이 쇄도하고 있다. 광주시는 대구의 확진환자를 받아들여 `달빛동맹'의 의미를 구현했고, 광주의 중학생 7명은 설날 받은 세뱃돈으로 100만원을 모아 대구적십자에 전달했다. 한 마을 주민들은 지역 특산물인 봄동 800㎏을 수확해 대구에 보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한 기초생활수급자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의료인들을 TV에서 보고 꼬박꼬박 모아둔 200만원을 내놨다.

이들만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마스크를 만들어 취약계충에 전하는 봉사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세입자의 임대료를 면제하거나 깍아주는 건물주들이 줄을 잇는다. 자가격리자의 집 앞에 힘을 내라는 위로 편지와 함께 과일이 배달되기도 했다. 이들 모두 80년 전 덩케르크로 향하던 영국 연합선단의 일원과 다를 바 없다.

덩케르크의 신화가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 때와 다른 것은 선단을 앞장서 주도하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임하자마자 난제에 봉착한 처칠 수상의 단호한 결단력, 영국 정부와 군의 신속하고 용의주도한 집행력이 민간의 호응을 이끌어내 불가능에 가까웠던 다이나모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 됐다. 영화에서 고트 장군은 덩케르크에 남아있는 프랑스군을 돕기 위해 마지막 배의 승선까지 거부하고 현지에 남는다. 늘 국민에게 뒤쳐지는 우리의 리더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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