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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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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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이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기고, 해야 하는 것을 없애고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이루어진 나라가 부자다.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것이 무위無爲라고 한 노자의 말이 일면으로 통하는 시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앞에 보이는 것들을 본 사람, 즉 주체인 “나”가 그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주인이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상과 욕망이 잠재된 인간 세상에 오늘도 우리는 그 무엇과 부딪혀 갈등하며 산다. 지금 우리는 신본주의도 인본주의도 물질주의도 개인주의도 이기주의도 아닌 또 다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나라비로 선 줄에서 꼰닥꼰닥 여우잠을 잤다. 이른 아침 인근에 있는 어느 면 우체국에서 한 시간 반가량 줄을 섰다가 냉정하게 잘리고 또 다른 장소에 와서 줄을 서 있다. 이 자리만큼은 희망이 있는 곳이라 무던히 지켜야 한다. 한나절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살라 먹히는 시간을 멍때리기 하며 끝까지 내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혹여 내가 헛눈질이라도 하면 새치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다. 몇 시간째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앞뒤 사람들도 매양 한마음일 거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당분간 집안에서만 있어야 할지 모른다. 해서 자발적인 내 행동을 숙연히 받아들이며 수양 중이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 기다리는 이도 있으니 이깟 4시간쯤이야 수양도 아니다. 맑은 햇살을 받으며 늘어선 인파들 뒤에서 누군가 어디로 끌려가는 난민수용소 포로들 같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워도 “조심하면 되지. 뭐 이런 일로”라는 반응이었다. 매스컴이나 주위에서 마스크가 소진되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 사태를 지켜본 오늘에서야 “이게 아니구나”하고 집을 나섰다. 마스크 파동이 일어나기 전 아들이 10장+1장짜리 두 개를 2만 원에 사 왔을 때, 비싼 걸 왜 사 왔느냐고 한 마스크가 오늘 아침에 동났다. 하는 수 없이 아침부터 기를 쓰고 파는 곳을 쫓아 배회한다. 집 앞 마트에서 줄 서는 것을 보고 시간상 먼저 판매하는 면 우체국으로 원정을 갔다. 줄 선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1시간쯤 지나자 두 여성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왜 새치기하냐고 물으니 잠깐 아이 학원에 데려다 주고 왔다고 한다. 분명 내가 줄 선 이래 처음 보는 얼굴이다. 판매 시간이 임박해지자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몇몇이 중간에 끼어든다. 판매 전 표를 나눠주더니 85번까지란다. 번호를 굳이 매긴다면 92번인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 집 앞 마트로 왔다.

마트에서 4시간 기다렸다가 마스크 5장을 7천8백 원에 사들고 나오는데, 뒤를 보니 아직 여유분이 있어 보여 다시 줄을 섰다. 표를 받고 서 있다가 양심이 찔러 아들을 불러내 줄을 세웠다. 모자 달린 코로나대비 마스크로 완전무장하고 나온 아들도 무사히 5장을 샀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성취한 양 기세 당당하게 집에 왔다. 다음 날은 전날과는 달리 아침 9시부터 표를 나눠준다는 말에 서둘러 나갔다. 40분 만에 팔뚝에 도장과 번호표를 받고 마스크는 오후 2시부터 6시 사이에 찾아왔다. 15장이면 세 식구 당분간 쓸 수 있으니 내일은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떤 위기가 닥쳐도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다. 언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 코로나19 또한 21세기 우리에게 닥친 돌발적인 현상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347년 흑사병으로 2,500만 명,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 사상자를 낸 일이 있다. 고차원적인 신神도 사상도 막을 수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대처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이든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고 반응할 때 새역사가 펼쳐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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