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길
사람과의 길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0.03.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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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이스탄불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는 훤칠한 키에 깔끔한 외모로 까칠해 보였다. 한국인 가이드는 첫인상과 달리 여행지의 역사를 구수하게 쏟아 냈다. 해박한 지식으로 그리스로마신화를 터키지역과 연결시켜서 지루하지 않고 쉽게 풀어냈다. 터키는 여행 일정상 하루에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버스에서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화술로 관광지에 대한 설명과 일화를 들려주었다.

틈만 나면 자신의 잘생김과 잘난 체를 어필하면서 시선을 집중시키면서도 밉상은 아니었다.

여행 내내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터키를 사랑하는 마음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질 만큼 진솔하고 당차 보였다. 터키인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그의 말에 신뢰가 느껴졌고 응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성향의 가이드를 만났다. 재미없는 역사 얘기에 잠을 자기도 하고, 가이드 때문에 기분이 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 터키 가이드는 인상적이었다. 여행가이드를 하기 위해 관광지의 역사를 외워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충분히 습득해서 듣는 이를 고려한 재미와 흥미가 있었다.

여행에서 어느 곳을 가느냐보다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여행을 누구와 가느냐의 선택에서 일단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떠났다. 우선 여행에서 마음이 맞고 함께 방을 쓰는 지인과도 트러블이 없다. 잠버릇이 고약한 나로서는 다행이다. 궁합이 맞는 사람들과 떠난 여행에서 여행지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가이드를 잘 만났으니 그것도 행운이다. 가이드의 말처럼 그냥 보면 돌인데 거기에 담긴 역사를 듣고 보니 세월을 거스르는 유적지로 다가선다.

일주일간 함께 한 서른한 명은 이틀 정도 지나자 조금 친숙해졌다. 팀 중 누구 하나 튀는 이 없이 규칙과 약속을 잘 지켰다.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으로 얼굴 붉히는 일과 언쟁 없이 일정을 마쳤다. 여행이 끝나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짧은 여행을 무탈하게 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여행을 갔다 온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행을 떠날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입국을 금지했다. 세계로 나가는 길도 막히고 국내에서의 이동은 더더욱 그러하다. 갑작스러운 확진 환자의 증가와 지역사회 감염의 확산으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긴장과 공포가 일상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2월 말경 한의사협회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체화된 마스크 사용법과 손위생 관리, 개인물품 위생관리 등을 철저히 지켜주길 당부했다. 또한 외출을 최소화하여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 재택근무, 개학연기, 어린이집 휴원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했다. 3월 첫 주는 큰 비나 눈이 오는 날처럼 집에 머무는 일주일을 권고했다. 질병본부도 마스크보다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SNS를 통해 많은 사람은 이 위기를 함께 견디기 위해서 기부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다.

여행뿐만 아니라 삶에서 사람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 사람을 향한 길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처럼 흐르고 있다. 가짜뉴스, 마스크 사재기, 보이스피싱 등 불신을 키우기보다는 서로를 신뢰하고 한 뜻으로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30초 손씻기를 지키고 지혜를 모은다면 솔로몬의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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