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묻었던 ‘트로트의 진실’을 꺼내다
가슴속에 묻었던 ‘트로트의 진실’을 꺼내다
  •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 승인 2020.03.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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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얼마 전부터 나도 모르게 구성진 트로트곡을 읊조리고 있다. 얼마 전에 방송에서 본 `막걸리 한잔'이란 신나는 노래이다. 리듬과 멜로디는 경쾌하지만 제목과 가사 내용은 되뇔수록 눈물이 핑 돌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몹시 나서 혼자 있을 땐 노래를 부르며 눈물도 흘려본다. 사실 우리 아버진 술을 안 드셔서 막걸리 한잔 손수 따라 드리지 못했지만 마치 그 노래 속의 주인공이 나란 착각 속에서 노래를 불러보곤 한다.

가사가 너무 좋아 적어본다.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살림이 어렵던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농사나 노동일로 생계를 이으셨다. 힘든 육체와 경제적인 중압감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셨을 것이다. 힘든 일을 마친 저녁이면 막걸리 한잔으로 시름을 달래고 집안 살림 걱정, 자식 교육 걱정으로 혼자 외롭고 힘드셨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막걸리 한잔 드시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 붕어빵 한 봉지 들고 신나게 아들 이름을 크게 한번 부르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셨을 게다. 술 드셨다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한바탕 부부싸움, 그리고 이불 속에 숨어 싸움이 끝날 때만 기다리던 자식들, 그러한 아버지 모습에 원망만 했던 우리네 자식들이었다. 어른이 되어 내 자식을 보며 아버지를 이해하는 진솔한 이야기라 너무나 가슴을 울리게 한다.

지난해 봄부터 방송국마다 트로트 열풍에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익숙한 트로트 음악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여자 가수들이 경쟁을 하던 `미스 트롯'이 성공을 이루자 잘생기고 멋진 개성의 퍼포먼스도 잘하는 남자들의 경연인 `미스터 트롯'이 매주 목요일 밤 많은 여성과 가족이 함께 모여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며 화목한 가족애도 즐기는 모습들이 보인다. 방송 시청률도 근래에 보지 못한 최고의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다고 한다.

트로트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미국의 팝 리듬에 우리의 한이 담긴 창이 조합을 이루어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2박자의 노래로 발달해 왔다. 화려한 전주와 중간 중간의 감초 같은 오브리가토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멋진 트로트의 탄생이 되었다. 그동안은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있던 많은 사람이 영어로 된 미국의 팝을 불러야 엘리트이고, 언제 끝나는지, 언제 박수 쳐야 되는지도 모르는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동안 정말 자신들이 없었던 같다. 이제 경제가 좋아지고 아카데미 최고상을 수상하여 온 세계가 대한민국에 환호하는 세계 최고의 문화 시민이 되자 국민 마음속엔 자신감이 뿜뿜 되었다. 그동안 마음속에 꼭꼭 숨겨왔던 우리의 한과 정이 가득한 트로트로 내 마음을 자신 있게 꺼내어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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