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보다 못한 말들
침묵보다 못한 말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3.0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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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말을 하려거든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하라. 아라비아 격언이라고도 하고, 어느 수도원의 구호라고도 한다. 흔히 들어 식상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바로 뒤에 이런 말이 따라 나온다. 말을 배우는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 놀리지 못해 근질거리는 입을 다스릴 능력을 갖추려면 오랜 수양과 성찰을 거쳐야 한다는 이 말이 더 명언으로 들린다. 요즘 여권 인사들의 언행을 접하면서 `침묵보다 나은 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또 구설에 올랐다. 이분이 총기를 완전히 잃었다는 판단은 했지만, 악화하는 속도가 이렇게 빠를지는 몰랐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를 이렇게 매도했다. “신천지 신자들의 동선을 찾는 등의 시급한 노력은 안 하고, 신천지에 협조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게 무슨 공직자냐”. 여기서 그쳤으면 한두마디 핀잔으로 끝났을테지만, 막장까지 가버렸다. “두 사람은 보수 정당 소속이다.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겨야 총선을 앞두고 TK 주민들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지 않겠나”. 두 단체장이 다가온 총선에서 보수정당을 돕기 위해 지역을 삼켜버린 재앙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비난받은 당사자들로서는 참기 어려운 인신공격이었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설령 그같은 확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차디찬 언사로 초유의 사태를 맞아 패닉에 빠져있을 상대방을 다그친 것은 잔혹한 처사다.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도 입 단속을 못한 탓에 그제 사퇴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당정청 회의 후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을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시행해 확산을 차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 처럼 주민 이동을 막는 극단적 조치를 결정한 것으로 오해받기 충분한 발언이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발언의 진의를 해명했지만 쏟아진 물이었다. 그렇지않아도 정부가 중국인 입국제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던 터였다. 중국 정부 눈치보느라 중국 국민의 입국에는 전전긍긍하면서 제나라 국민에겐 매몰차기 짝이 없다는 비난을 자초한 꼴이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경솔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의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을 묻자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인이었다”고 답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애초부터 원인은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인”이라고 재차 못을 박았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추진하지 못한 탓이라는 야당의 공세를 반박한 발언이었다. 많은 국민은 귀를 의심했고,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느냐는 힐난이 쏟이졌다. 설령 그 진단이 맞다 치더라도 중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돌아온 국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실책부터 사과하는 게 순서였다. 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애초부터의 원인'은 한국인이라며 중국을 방어했지만, 지금 중국은 우리 외교부의 통사정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지방정부의 한국인 차별과 박해를 방관하고 있다.

앞뒤를 재지못하는 경박한 발언들에서는 아직도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집권층의 오만이 읽혀진다. 지지층의 환호밖에 듣지 못하는 난청이 가져온 증세다. 마땅한 거처를 찾지못해 유랑하는 중도층의 한숨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왜 이런 배려없는 언행이 계속되는지 비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여권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방자한 언설이 계속되면 이번 총선에서 진짜 `비통한' 결과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국민이 자신보다 절대적으로 냉철하다는 진리부터 깊이 되새긴 후 말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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