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 침입자
손님과 침입자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0.0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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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너 피곤하니 쉬 거라” 하는 내 몸의 신호다. 오늘은 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지금 나라를 위협하는 불청객 코로나19가 대문 밖에 있어 두렵기도 하고 종일 엑스레이 촬영이나 해볼 참이다. 며칠 전 찍어두었던 영상을 보았다.
겨우내 눈 한번 내리지 않아 아쉬운 겨울이 되려나 했더니 겨울 끝에 그가 다녀갔다. 올 들어 처음으로 눈답게 내렸다. 오랫동안 보고 싶고 기다렸던 임처럼 반가웠다. 순간순간 휘몰아치다가 숨이 차면 폴폴 나리기만 하다가, 주먹만 한 눈송이로 갈채를 보냈다가. 눈의 향연이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눈이 내리는 풍경을 즐기는 일은 지루하거나 싫지가 않다. 온종일 쌓여 멋진 겨울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이 적막하고 조용한 산골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과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것을 봄바람이 시샘이라도 하듯 반나절 만에 그 존재를 지워버렸다. 봄눈 녹 듯 한다는 말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 손님은 VIP. 내가 해 줄 건 없고 내게 온전히 베풀고 조용히 갔다.
아들 내외가 3박4일을 머물다 오늘 돌아갔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아들은 석 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다녀가는 고정손님이다. 그래서 아들이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우리 내외는 청소에 돌입한다. 남편은 집에 손님이 와야 집안이 말끔해진다며 열심히 청소기를 돌린다. 그다음 이불빨래를 하고 장을 본다. 아들 며느리가 좋아하는 해물종류와 고기, 평소에는 손이 오그라들어 사지 못하던 과일도 이때는 장바구니에 쉽게 들어간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청소도 대충, 먹는 것도 대충, 밥하기 싫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히 먹기도 한다. 아들은 엄마 밥이 먹고 싶단다. 며칠 있는 동안 때마다 집 밥을 해줬다. 달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부르다. 예쁜 손님이다. 이 세상에 끝까지 내 것,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내가 낳은 자식도 키울 때까지만 내 곁에 둘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한 가정을 꾸리면 한집안의 가장이 되는 것을….
겨울을 이겨낸 사람만이 봄의 새싹을 맛을 본다고 했다. 참혹한 세상에서도 꼿꼿이 새싹이 돋아난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겨낼 것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아들을 보내며 마음이 무거웠다. 혹여 입국을 거부당하면 어쩌나. 다행히 입국은 했지만 오피스에서 혼자 밥 먹고 자택근무를 한단다. 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여러 사람을 위해 조심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아들 내외가 다녀간 집은 썰렁하다. 아들 내외와 함께 머물며 채웠던 웃음도 아들 따라 집을 나갔다. 손님에게는 최대한 관대하다. 눌러 살 것도 아니고 고작 몇 시간, 며칠 머물고 떠나는 것이 손님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 침입자는 야멸차게 보내야 한다.
지금 지구에 온 코로나19는 불속지객이다. 이 위협적인 침입자로 인해 우리는 지금 온 나라가 심란하다. 경제마비로 흔들리고 있다. 지구의 재앙이라는 말까지 한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손님으로 갈 때도 있고 우리 집에 손님이 올 때도 있다. 적어도 이렇게 불쾌하고 불편한 손님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TV를 보면서 세상이 각박해지는 요즈음인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사람들은 더 멀어지겠구나 싶다. 누구를 탓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니지만 서로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코로나 이 침입자가 빨리 사라져 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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