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욕
가문의 영욕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2.26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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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
공진희 부장(진천)

 

한진그룹 경영권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의 장녀 조현아씨가 장남 조원태씨를 회사 경영에서 내쫓겠다고 날을 세우자 조 전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와 차녀 조현민씨가 조원태씨를 편들며 경영권 분쟁에 불을 지폈다. 이른바 땅콩회항과 갑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들이 경영권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전선은 더 커지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강성부 KCGI 사장, 반도건설 3자 연합에 대해 한진그룹 전직임원회를 비롯해 한진그룹 노조 3곳이 공동 입장문을 내고 조원태 회장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조 회장의 경영 실패, 조 전 부사장의 도덕성 등으로 신경전을 펼치던 양측은 이번에는 전문성을 두고 여론전을 펼쳤다. 강성부 KCGI 대표가 조 회장을 경영 문외한이라고 주장하자 대한항공은 3자 연합을 투기 세력이라고 되받아쳤다.

양측은 다음달 25일 주총에서 승패의 판가름이 될 수도 있는 소액주주 사로잡기에 총력을 쏟아붓고 있다.

외국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재벌에서 창업주 후손들의 경영권 분쟁이 유독 빈번하다.

롯데와 효성은 총수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직후, 한진은 총수 타계 직후 막장 드라마같은 가족 내부의 경영권 승계 분쟁이 터져 나왔다.

진천 초평에서는 종중 내부갈등이 참극으로 이어졌다.

A(81)씨는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진천군 초평면의 한 야산에서 시제를 지내던 종중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현장에 있던 종중원 20여명 중 11명이 숨지거나 화상을 입었다.

종중 땅 문제로 오랜 기간 종중원들과 갈등을 빚어 왔던 A씨는 범행 전날 증평군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재벌가의 재산 상속분쟁을 현실로 보며 혀를 끌끌 차곤 한다.

그러나 산업단지나 개발예정지로 중종땅이, 또는 한 마을이 편입되어 그 보상금의 배분을 둘러싼 분쟁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물욕이 공평으로, 탐욕은 공정으로 포장되어 재산싸움의 상대를 원수나 적으로 만든다.

그 상대는 한 때 떡 하나로 정을 나누던 이웃이었으며 형제자매였다.

남들을 향해 비웃던 손가락질이 나에게 되돌아 오는 풍경이다.

자본의 천민성과 야만성이 우리를 끝없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으며 어려운 이웃에게 김치와 연탄으로 사랑을 나누던 평범하고 정많은 이웃을 탐욕과 분노에 찬 인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과정에서 협력과 배려는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분위기를 바꿔보자.

청주 미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아주 신씨 3대 120여명이 17년째 가족모임을 열고 있다.

이 모임은 우송 신희석 선생의 후손들이 매년 `효자 우송 신선생 손남매 한마음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5월 5일 혹은 8일에 열고 있다.

우송 선생의 자손으로 사촌지간인 신종수(54·DK세미콘 상무이사)씨와 신의수(54·제이비컴 대표이사)씨가 조부를 기리고 가족간의 화목과 우애를 돋우기 위해 2002년부터 모임을 열어왔다.

매년 90% 이상이 참여하는 이모임은 모두가 6촌 이내이다.

후손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며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안타까워 일년에 한 번이라도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는 신씨의 말이 제사와 재산문제로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는 가족이나 종중의 상황과 대비되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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