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잠식당한 소확행
코로나19에 잠식당한 소확행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2.26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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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지루한 일상.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꿈꾼다.

책장에 꽂힌 책을 칸을 옮겨가며 정리하기도 하고, 옷장을 뒤져 유행 지난 옷을 미련없이 버린다.

돈벼락 한번 맞아보고 싶은 꿈의 실현을 위해 지갑에 로또를 넣고 다니기도 하고, 유럽을 다녀왔다며 호들갑 떠는 친구가 부러워 적금 통장을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위한 삶을 살겠다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꿨다.

2018년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소가 발간한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2018년 우리 사회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소확행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게르 한스섬에서의 오후'에서 주인공이 느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은 누구에게는 하찮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연예인처럼 취미로 피규어를 모으듯 수백억 원의 빌딩을 척척 살수도 없고, 유명 유튜버처럼 수십억 원을 손에 쥘 수도 없으니 서민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살수밖에. 그래서 1박2일 여행으로도 행복해하고, 가끔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간만의 칼질로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바쁜 오후 시간에 마시는 커피 한 잔도, 퇴근 후 들이켜는 맥주 한 잔도, 손자 손에 세뱃돈 쥐여주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돈 많고 배경 좋은 부모를 둔 자녀처럼 부모 찬스를 쓰지 못해 아르바이트 전선을 헤매도 정치인처럼 선거철이면 고개 숙일 일 없으니 이 또한 다행 아닌가.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온 서민의 행복이 코로나19에 잠식당했다.

지인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친정 부모와의 제주도 여행을 코로나19 탓에 취소했다.

6형제의 맏이인 그는 올해 여든이 되신 친정 아버지를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지난달 서둘러 제주도 항공권과 숙박, 차량 임대까지 마쳤지만 결국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난생처음 하려던 효도가 불효 여행이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지인은 여행 취소로 항공료 위약금으로만 50여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지인은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도 풍광을 부모님과 함께 보고 싶었는데 소박한 꿈조차 날아갔다”며 “코로나가 소박한 행복도 빼앗아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가족 밴드에 올라온 안타까운 친척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대구에 사는 친척이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대구 소재 병원을 가기도 불안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자니 눈치 보여 답답해하고 있음을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증가하는 코로나 19 확진자 수만큼 우리의 일상도 엉켜버렸다.

코로나19는 축복받아야 할 출산도, 부모와의 추억 여행도 눈치 보게 만들었다.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 주민은 죄인이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만큼 사람들은 살기 위해 마음의 벽을 쌓았고 또 살리기 위해 그 벽을 허물고 있다.

때마침 코로나19 확산의 중심지로 확진 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대구에 타지역 의료진과 병원 직원 200여 명이 자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부 의사는 운영하는 의원까지 임시휴업해 가며 의료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구로 향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세상에서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고 했다.

꽃피는 춘삼월, 올해는 봄 소식보다 코로나19 종식 소식을 먼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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