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마그리트의 언어그림 (이이미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 1929
르네마그리트의 언어그림 (이이미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 1929
  •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 승인 2020.02.26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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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 그림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마그리트는 너무나 파이프 같은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프랑스어로 써 넣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순된 논리를 펴고 있는 마그리트의 문법은 무엇인가? 마그리트의 언어그림은 현실(reality)과 환영(illusion)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론들의 탐구와 병행하여 일상의 언어가 사고를 감추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마그리트는 이러한 언어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사고와 언어 구조 속에서 감추어진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은 오브제와 그것을 재현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관계도 존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작품 속에 있는 텍스트는 칼리그램에서 처럼 화면 속 이미지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형적인 형태로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어느 곳에도 파이프는 없다'라는 언표일 뿐이다. 따라서 언어나 그림은 새로운 의미의 관련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의미구조를 파괴한다.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이것은 언어의 놀이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들은 외부의 대상과 전혀 닮음이 없다. 가령 `책상'이라는 단어는 상판과 다리가 합해져서 모양을 갖춘 물질의 책상과는 전혀 닮음이 없다. `책상'은 영어로는 `desk'이다. 글자 `책상'과 `desk'는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이 아닌 그 책상을 규정해놓은 하나의 언어기호체계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마그리트의 부정을 납득하게 된다. 실제 `파이프'와 언어 `파이프'는 모양과 성질에 있어 어떠한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거기에는 단지 결정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 놓인 잘 그려진 파이프가 현실의 파이프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을 뿐이다.

마그리트는 캔버스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유쾌하게 뒤집어 표현함으로써 흥미를 자아낸다. 또한 논리와 상식을 비꼬듯이 텍스트들을 적어놓음으로써 작품 앞에 서는 우리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도 한다. 실제로 그의 언어그림과 마주하게 되는 관람객은 이와 같이 부정하는 텍스트를 읽으며 납득이 될 때까지 어리둥절해진다. 이미지들은 너무나 실물과 닮아 있고, 실물과의 유사성을 통해 관객은 그곳에 실재하지 않은 진짜 대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따라서 이미지는 실물을 배반하고, 이미지를 통해 실재 현실을 인지하는 관객을 배반한다.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이상애 미술평론가·미술학박사

 

마그리트는 단순히 보이는 정형화된 형태의 이미지를 소재와 구조, 발상의 전환, 언어와 결합 등을 통해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미지를 창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역설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관습적인 체계를 파괴하고 경직된 우리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 한 폭의 회화가 지시하는 바는 바로 우리가 살면서 인지하는 현실은 이미지에 의해 구축되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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