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신의 한 수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0.02.2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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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뒤늦게 영어 공부하는 맛이 쏠쏠하다. 무슨 시험 준비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 해외여행 가서 의사소통이나 하자고 시작한 회화 공부다. 애쓰는 엄마를 위해 딸아이가 《 Daddy-Long-legs 》, 키다리 아저씨라는 명작동화 원서를 추천해 주었다. 쓰면서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에 노트에 한줄 한줄 써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신의 한 수였다. 편지글이다 보니 매일 편지를 쓰는 꼴이 된 것이다. 읽기만 할 때와는 다르게 마치 내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그림까지 따라 그려 가며 옮겨 적다 보면 장면마다 설ㅤㄹㅔㅆ다가, 슬펐다가, 화도 났다가, 또 뛸 듯이 기쁘기도 했다. 감정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랄까 소싯적으로 돌아가 연애편지라도 쓰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선택한 결과가 생각보다 좋을 때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을 쓴다. 고대 중국의 `신수(神手)'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흔히 바둑에서 세가 몰리다가 기막힌 묘수를 두어 판국을 뒤집었을 때 그 수를 가리켜 신의 한 수라는 표현을 썼다. 요즘에는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이며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해결하는 데에 매우 뛰어나고 기묘한 수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도 이 표현을 자주 쓰는 편이다. 몇 주 전에 큰딸이 결혼할 시댁 분들과 상견례를 했다. 사돈어른의 배려로 우리 쪽에서 장소를 정하기로 했는데 은근히 고민이 되었다. 수소문해서 몇 군데 사전 답사한 결과 집 근처에 있는 양식집으로 결정했다. 스테이크 맛도 좋고 서비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뵈는 저수지 풍경이 여유롭고 좋았다. 덕분에 와인 한 잔 곁들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상견례를 잘 마쳤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조심스러운 때에 여럿이 덜어 먹는 한정식보다 훨씬 나았다며 신의 한 수를 들먹였었다. 아침에 끓인 배춧국을 먹으며 남편이 속이 확 풀린다고 말한다거나, 정한 일이 순서대로 매끄럽게 진행될 때, 별러서 계획한 여행 내내 날씨가 좋을 때, 처음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맛있을 때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역시 신의 한 수였어!”

사실 유한하고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으로 어찌 감히 신의 영역을 넘보랴, `신(信)의 한 수' 정도면 적절할 것 같다. 최대한 고민해보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는 선택, 그 결과가 예측대로 괜찮았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특별한 고민 없이 한 선택에서는 결과가 좋았어도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뿐 이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가 진짜 `신(神)의 한 수' 이었을 텐데. 그렇더라도 나는 혹시나 하며 기다리는 것보다는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인생이라는 바둑판에서 나는 기량이 뛰어난 기사(棋士)는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앞만 골똘하다가 종종 대마를 내주는 초보 기사에 가깝다. 굽이굽이 만나게 되는 대국에서 위기십결(圍碁十訣)의 기본자세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풀어 갈 최선의 한 수를 고민할 뿐이다. 그 깜냥 안에는 `신(信)의 한 수'면 족하다. 이렇게 매 순간 정성껏 살아가다 보면 불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묘수가 절실한 위기의 순간에 신도 어여삐 여겨 입김을 보태줄는지 누가 알겠는가.

Dear Daddy-Long-Legs, 그럼 오늘도 말랑말랑해져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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