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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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0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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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 한 마리
김훈일 주임신부(초중성당)

시인 기형도의 '안개'라는 詩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인간의 소외를 문제 삼은 섬뜩한 시 구절이다. 그런데 이 시 구절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노숙자와 빈민, 사회적 약자들이 거친 신음을 흘리며 소외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그들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경제 성장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데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스스로 낙오된 그들을 돌 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책임은 사회적 발전에서 낙오된 그들 책임이다. 그러니 이 시보다 우리 사회가 더 무섭다. 대학입학이라는 영광 뒤에는 한 해 입시철에만 200명씩 되는 청소년들이 입시와 연관되어 자살한다고 한다.

수십 년 그래왔으니 월남전 파병 전사자수도 그보다는 적을 것이다. 참 야만적이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도 이렇지는 않다.

독일 같은 나라는 아예 대학서열이 없다. 대학입학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수학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집에서 가까운 대학으로 보낸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보다 월등한 학문을 자랑한다. 이렇게 윤리와 도덕과 건전한 가치관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선진국은 허울일 뿐이다.

그 허울이 얼마나 우리는 참혹하게 할지 우리는 지난 4월 중순쯤 미국에서 일어난 한 청년의 어이없는 없는 범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얼마나 놀랬는가!

우리 국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 그냥 세상이 밉다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를 무참하게 죽였다. 이런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적 질병에 시달린 한 청년을 무모한 행동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정작 진범은 우리들 자신이다.

그가 인간 소외의 지독한 고독에 시달릴 때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무자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씨 없는 수박이 달고 맛있지만, 정말 수박에 씨가 없는 것이 좋은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 인간들 중에서 약하고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우선 되어야 한다.

성경에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루카복음 15,17)가 있다. 양을 100마리 치는 목동이 있는데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면 참 목자는 아흔아홉마리 양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길을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면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베푼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논리로 따지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보다 99마리 양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 시대는 말한다.

현대 사회의 무관심과 이기주의, 실용주의, 과학주의는 인간을 소외의 극한으로 몰고 간다.

메마르고 타버린 영혼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그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구하는 길이다.

누군가 그 청년의 아픔과 외로움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소외된 이들이 많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따듯한 사랑이 가득하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롭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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