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코로나19 그리고 삼동윤리(三同倫理)
‘기생충’, 코로나19 그리고 삼동윤리(三同倫理)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0.02.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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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한국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상을 휩쓸었다.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을 받았으니 영화 자체로 보면 알짜배기 상은 모두 받은 셈이다. 아카데미는 영화라는 부분에서 이제 어떠한 장벽도 없다는 선언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글로벌 시대, 즉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라의 국경선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들이 그대로 있었다. 어쩌면 `기생충'이란 영화가 아카데미의 글로벌화에 대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만든 것은 필연일지 모른다. 영화 `기생충'의 내용 역시 차별과 혐오 속의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공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가 그동안 비영어권 영화를 차별해 왔던 역사를 버리고 진정한 영화의 `세계화 시대'를 선언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들의 민낯을 보고 있다.

마스크 사재기와 손소독제 사재기, 교민수용에 대한 갈등, 유튜버들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 가짜 뉴스, 중국인 혐오 댓글 등 크고 작은 차별과 혐오의 해프닝이 계속 일어나는 중이다.

중국에서 병이 발생했다고 중국인 전체를 혐오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또 어떤 병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어떤 전염병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국에서도 독감 바이러스로 인해 8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을 혐오하는 기류는 생기지 않았다. 미국은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화의 시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세계는 협력과 교류로 살아가고 있다. 관광과 무역으로 자유롭게 왕래를 하고 있다. 영화`기생충'이 던진 메세지인 `공생'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공생'은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비슷해지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은 가난한 자가 부자가 돼 버리거나 부자가 가난한 자가 되면 없어진다. 기왕이면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협력과 상생의 태도가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차별과 혐오의 태도는 모두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중국 지역의 위생과 식습관이 연일 매체에 보도되었다. 우리는 그 기사 속에서 우리들 마음 한켠에 숨겨두었던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꺼낼 것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의 손길을 내밀어 다 함께, 모든 나라와 모든 지역이 청결하고 위생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나라와 모든 지역이 내가 살고 내가 활동하는 지구촌이기 때문이고 세계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정산 송규 종사는 지구촌의 윤리 강령으로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주장하셨다.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

모든 종교의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이며, 모든 인종과 생령의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며, 모든 사업의 목적은 세상을 개척하는 것으로 같다는 뜻이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으로 세계화를 선언하였듯,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는 삼동윤리(三同倫理)의 정신으로 차별과 혐오가 아닌 협력과 상생의 마음으로 진정한 세계화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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