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文대통령 말씀 듣고 충격의 도가니"…'짜파구리' 오찬
봉준호 "文대통령 말씀 듣고 충격의 도가니"…'짜파구리' 오찬
  • 뉴시스 기자
  • 승인 2020.02.20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文대통령 발언 들은 봉준호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
"기승전결 마무리에 글 쓰는 사람으로 충격에 빠져"

송강호 "음식은 우리 민족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어"

빈부격차 현실 보여준 '짜파구리' 맛보기로 올라

봉준호 지인 행정관 참석 눈길…"결혼 비디오도 찍어"

봉 "이 배우 누구?"…김 여사 "사랑의 불시착서 봐"



"저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첫 마디였다. 봉 감독은 "바로 옆에서 대통령님이 길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 20여명은 이날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봉 감독에 앞서 1700여자 분량의 모두발언을 통해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팀의 수상을 축하하고 그간의 노고를 격려했다.



또 문화 예술계의 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한 배급 상영 유통구조 개선의 필요성과 함께 스크린 상한제, 근로 환경 개선의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막힘없이 발언을 이어 나갔다.



문 대통령은 "한마디로 영화 산업의 융성을 위해 영화 아카데미 지원을 늘리고 확실히 지원하겠다"면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염두에 둔 듯 "그러나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일동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봉 감독은 "저나 송강호 선배, 최우식 씨 다 스피치라면 한 스피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작품 축하부터 한국 대중문화를 거쳐 영화 산업 전반에 걸친, 결국 짜파구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께서) 말하신 게 거의 시나리오 2페이지"라며 놀라워했다.



이어 "이걸 분명히 암기하신 것 같지 않고 평소 체화된 이슈에 대한 주제 의식이 있기에 줄줄줄 풀어내신 것 같다"며 "지금 말씀하신 4분의 1정도의 짧은 스피치도 프롬프터를 보면서 하고, 대사를 많이 외우는 배우들, 미국 배우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라고 물은 뒤 "의식의 흐름인지 궁금하다"고 경탄했다.



봉 감독은 "너무나 조리 있게 정연한 논리의 흐름과 완벽한 어휘를 선택하시면서 기승전결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충격에 빠져있는 상태"라며 다시금 놀라움을 표출했다.



봉 감독은 그러면서 "작년 칸에서부터 한국과 프랑스와 여러 나라 개봉을 거치고 아카데미, 오스카를 거쳐서 긴 대장정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영광스럽게 청와대에서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좋은 자리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배우 송강호 씨도 마이크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기 전 송 배우와 환담을 나누는 등 후보 시절에도 송 배우와 만남을 갖곤 했다.



송 배우는 "음식이라는 것이 특별히 우리 민족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다"며 "그냥 먹거리가 아니라 정서가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대장정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게 특별하다"고 말했다.



또 "2년의 긴 마지막 행사다. 참으로 뜻깊은 자리가 자연스레 된 것 같아 더 뭉클한 감동이 있다"며 초청에 감사함을 표했다.



이날 오찬 메뉴는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올랐다.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각각 하나씩 넣고 스프를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매콤한 짜장라면이 되는데, 이걸 '짜파구리'라고 한다.



영화가 정점으로 향하기 직전 호화스러움의 끝을 보여주는 소고기 부채살을 넣은 짜파구리가 등장한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서는 두 하층 계급 가족(짜파게티와 너구리)과 상층 계급 가족(소고기)이 곧 뒤엉키게 될 거란 걸 예견하는 장치이자, 빈부 격차를 실감나게 보여준 소재라고 분석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직접 오찬 메뉴 소개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전문적인 분들이 준비한 메뉴 외에도 제 아내가 우리 봉 감독을 비롯해 여러분에게 헌정하는 짜파구리가 맛보기로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 초청 행사에는 봉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으로는 곽신혜 바른손 이엔이대표, 장영환 프로듀서, 한진원 작가, 김성식 조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등 10여명이 자리했다.



출연진으로는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장혜진, 최우식, 이정은, 박명훈, 정지숙 씨와 정현준 군 등 10명이 함께한다. 2011년생 정 군은 어머니와 동행했다.



오찬에 앞서 사전 환담도 진행됐다.



봉 감독이 과거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대학 동기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소속 행정관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봉 감독은 이 행정관과의 인연에 대해 "제가 결혼하고 충무로에서 연출할 때 쌀도 한 포대 갖다주고 그랬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이에 행정관은 "내가 결혼할 때 결혼 비디오도 찍어주고 그랬다"고 보탰다.



문 대통령은 봉 감독에게 "아내가 특별히 팬"이라며 반가워했다. 김 여사가 "남편과 영화를 봤다"고 하자 봉 감독은 "즉석 퀴즈를 내겠다"며 출연진 한 명을 가리킨 뒤 배우 이름을 묻기도 했다.



김 여사는 이에 "근세('기생충'에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역할)"라며 "눈 때문에 알겠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많이 봤는데 눈 때문에 금방 알아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영화 속 기정(박소담)이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해 부른 이른바 '제시카 송'에 대해 "누가 지어준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박소담 배우는 "감독님"이라고 답했고, 봉 감독은 "일본 관객들도 그걸 쓴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송 배우는 문 대통령 부부에게 봉 감독의 각본집과 스토리북 2권을 선물했다. 이 책에는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의 보유자 답게 영화 스토리, 그림,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