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향기는 벌·나비만 유혹하는 것은 아니다
꽃의 향기는 벌·나비만 유혹하는 것은 아니다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0.02.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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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꽃의 향기는 벌 나비만 유혹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꽃의 향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나를 유혹해 대학원 논문까지 쓰게 한 난의 향은 십리향, 여름에 피기 시작해 백일 동안 핀다는 배롱나무 향은 오리향,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다정큼나무는 칠리향이라고 한다. 발끝에 묻어 백리를 간다는 백리향, 섬백리향은 우리나라에서 희귀식물로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천리향으로도 불리는 서향이나 백서향은 복되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향기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잎이나 줄기에 향이 나는 허브 종류와 달리 꽃에서 나오는 이들의 은은하고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런데 만리향도 있다. 얼마나 향기가 좋고 멀리 가면 만리향일까?

보통 시중에서는 목서, 금목서, 은목서, 구골나무를 만리향이라고 한다. 때로는 돈나무를 만리향이라고도 하는데 천리향, 만리향이라는 식물 이름은 아예 없는 것이고 좋은 향기가 멀리 가는 나무라는 뜻이다.

`봄비 갠 오후 /사르륵 사르륵 /뒤를 밟는 한 여인이 있다 /숨이 막히도록 떨리는 가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달디단 살 내음 /형체도 없는 그림자가 몸을 덮쳐온다 //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리 진한 향기로 나를 유혹하는 걸까 /그래도 행여 지나는 길이거든 /내 가난한 마음만은 채워놓고 갈 일이지 //이미 제멋대로 부풀어진 몸 /주체할 수 없어 뒤를 돌아보니 은목서 한 그루 /제 몸 풀어 푸른 향기를 빗고 있다 //아니, 저 나무, 저 향내들 /오늘 기어코 /길거리 사내란 사내는 죄다 유혹하여 /사단을 내 놓고 /홀연히 사라질 모양이다 (은목서향기의 유혹· 김정호)

꽃말이 `유혹'이듯이 얼마나 향이 강하면 길거리 사내를 죄다 유혹할까? 목서류는 가을에 꽃이 핀다. 시인은 봄비 갠 오후라 했는데 가을비 갠 오후라 고쳐야 하지 않을까? 목서류 학명의 속명인 `오스만투스(Osmanthus)'는 그리스어로 `향기'를 뜻하는`오스메(osme)'와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로 `향기를 가진 꽃'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향수 샤넬 No.5의 원료로 사용할 만큼 향기가 좋은 목서 가족이다. 목서는 물푸레과의 나무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추위에 약해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부에서 자생한다.

여러 잡다한 일들을 끝내고 나니 목서의 향이 생각난다. 언젠가 남부지방에서 맡아본 목서의 향에 빠져 가까이 두고 싶었지만 추위에 약한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시골집 아주 따뜻한 곳에서는 겨울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목서를 구하여 심어 보기로 하고 멀리 꽃지기 둘과 같이 남쪽 마을을 다녀왔다. 기왕이면 금목서를 심었으면 좋겠지만 은목서가 좀 더 추위에 강하다기에 은목서로 결정하고 분을 떠와서 심었다. 추위를 이겨내고 잘 살아 주고 진한 향기를 뿜어주길 기대하면서. 은목서처럼 향기 있는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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