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2.1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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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호미를 들고 마당을 살폈다. 분명 겨울인데도 푸릇한 들풀들이 여기저기 올라와 있다. 하긴 이번 겨울이 겨울답지 않긴 했다. 그렇다고 이 계절에 풀을 뽑으러 다니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다. 실한 것이 제법 덩치도 있는 편이었다. 마당의 복수초가 엄지손가락 만큼 키를 키워 올렸고, 수선화도 초록색 여린 잎을 슬며시 내밀고 있었다.

지난주였다. 그렇게 마당의 풀을 뽑았던 것이. 그런데 엊그제 이틀에 걸쳐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을 통틀어 제일 많이 내린 눈이었다. 폭설로 안전사고에 대한 방송이 이어졌고, 교통사고 소식도 들려왔다. 때, 늦은 눈 소식에 사람뿐 아니라 땅속에서 기지개를 켜던 동·식물들도 놀랐을 것이다.

마당을 나가 보았다. 다행히도 눈들은 녹아 복수초도 수선화도 잘 버티고 있었다. 아마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중이리라. 하지만, 잘 버티고 있는 것은 화단의 화초뿐이 아니었다. 마당의 들풀들도 잘 견디고 있었다. 들풀들은 뽑히지 않은 것뿐 아니라 지난주 뽑아놓은 돌나물, 망초, 광대나물들도 시들지도 않고 싱싱하기까지 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폭설이 연일 뉴스로 모든 신문과 방송이 떠들썩했을 테지만 `코로나19'에 밀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전염병을 부른다고 했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어쩌면 지금의 재앙과도 같은 `코로나19' 사태는 예견된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우리 인류는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더욱더 편리해졌으며 수명 연장의 꿈도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백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문명을 대표하는 과학의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변종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있다.

얼마 전 KBS1 교양 프로그램의 <다큐 인사이트-천 년 거목의 죽음, 바오밥의 경고>를 보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2000년 이상을 살만큼 수명이 긴 식물 중의 하나라는 바오밥 나무가 요즘 돌연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주변의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바오밥 나무가 죽어간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오밥 나무가 죽어가는 이유가 바로 남아프리카 일대의 급격한 기후변화, 즉, 극단적 기상이변 현상이라고 밝혀졌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활동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게 과학자들의 입장이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기후 변화에 대한 이상 현상들이 보고되고 있다. 명태가 잡혀야 할 동해에서 제주도가 주산지였던 방어가 잡힌다거나 전남의 벌교 뻘에서 1년에 20,000톤씩 생산되던 꼬막이 요즈음은 3,500톤 정도만 생산된다거나, 아직도 한참 시끌벅적해야 할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 축제장이 얼음이 얼지 않아 폐장되었다는 소식들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는 모두 지구온난화가 그 주범일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감염병이 4.7% 늘어난다고 경고한다. 더워지는 날씨는 인간의 면역 체계를 약하게 할 것이고, 우리 몸에 들어온 병원균은 인체에 맞게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앞으로 더워지는 날씨에 어떤 바이러스가 습격할지 모른다. 그때도 우리는 그저 과학만을 맹신할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더 겪어야 깨달을까. 바로 지금 지구 온난화의 경고는 우리 집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땅속을 터전으로 삼는 동·식물은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 잠을 자고 영양분을 저장해야 할 지금이다. 그런데 따뜻한 봄이라고 이상한 날씨가 거짓 손짓을 하고 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착한 동·식물들은 무슨 죄일까. 죄는 우리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데도 벌은 엉뚱한 자연이 받고 있으니 어찌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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